귀농 후기 16

밭농사 한 해를 한눈에 — 보리, 감자, 고구마, 순무, 고추까지

콩 농사는 지난 글에서 따로 풀었으니, 오늘은 강화도에서 길러본 다른 밭작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려고 한다. 보리, 감자, 고구마, 순무, 고추. 작물마다 심는 법도 캐는 법도 제각각이라, 같은 밭농사라도 손이 가는 자리와 시기가 다 달랐다. 사진을 곁들여 한 해 밭농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여드리겠다.6월의 황금물결, 보리밭먼저 보리다. 사진 속 누렇게 익은 보리밭에 내가 서 있는 게 6월쯤 모습인데, 베기 직전이라 그야말로 황금물결이다.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넉넉해진다.보리는 겨울에 심고 겨울을 나는 작물이다. 보리밭은 밟아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보리가 심어진 땅이 겨울에 들떠있으면 뿌리가 얼기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보리밭은 물을 대는 논농사가 아니라 마른 땅에서 짓는 밭농사다. 그래서 보리밭이..

귀농 후기 2026.06.11

운동회를 기억하게 한 면민의 날, 강진 땡벌이 울려 퍼진 새우젓축제 — 강화도에서 보낸 축제날들

농사일에 파묻혀 살다 보면 계절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그런데 강화도에서 지내는 동안 의외로 마주친 게 있었다. 바로 축제와 행사다. 많이 다닌 건 아니다. 일하는 처지라 멀리까지 찾아다니며 즐길 형편은 못 됐지만, 가까운 데서 열리는 행사는 짬을 내서 참가했다. 오늘은 그중 기억에 남는 강화도 축제 두 가지를 풀어보려고 한다.학창 시절 운동회가 떠오른 면민의 날먼저 봄에 있었던 면민의 날이다. 5월 초, 어린이날 바로 전날인 5월 4일에 열렸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지내던 면에서 열린 행사였는데, 강화도는 면마다 이런 면민의 날을 연다. 면 11개 마을의 이장님들과 주민들이 다 모여서 축제처럼 하루를 보내는 자리다. 장소는 면에 있는 학교 운동장이었다.그해 행사의 주제는 하나된 우리면, 행..

귀농 후기 2026.06.09

한여름 콩밭에서 추수까지 — 기계화 콩농사 이야기

지난번 글에서 붉은 콩 씨앗을 심던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그 뒤 이야기다. 그 붉은 콩이 땅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여름 햇살을 받으면서 쑥쑥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콩만 올라오는 게 아니다. 골 사이로 잡초가 같이 올라온다. 콩 농사라는 게 파종은 트랙터와 파종기가 거의 다 해주지만, 그 뒤부터는 사람이 계속 밭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제대로 녀석들이 잘 크고 있는지는 사람이 다니면서 확인해야 하고 밭을 도는데 반나절도 더 걸리는 작업들이다. 잡초와의 싸움이 먼저였다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골 사이 잡초부터 잡아야 한다. 초반에 한 번 잡아주면 그래도 뒤가 한결 수월해진다. 2~3번 정도 콩이 크기전까지 제초작업을 해야 했다. 우리는 콩을 2만 평 가까이 심었으니까,..

귀농 후기 2026.06.08

강화도에서 키운 강아지와 고양이-먼저 떠나보낸 아쉬움

도시에 살 때는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게 큰맘 먹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은 달랐습니다. 마당이 있고, 사람보다 동물이 먼저 드나드는 동네라 키울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솔직히 제 의지로 시작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다 어쩌다 보니 식구가 됐죠. 오늘은 강화도 영농조합에서 일하던 시절, 제 곁을 스쳐 간 강아지와 고양이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끝이 마냥 밝은 이야기는 아니에요.갈색이, 먹는 것만 밝히던 녀석처음은 강아지 두 마리였습니다. 주변 분이 강아지를 줬는데, 정확히는 제게 준 게 아니라 영농조합에 준 거였어요. 한 마리는 짙은 갈색, 한 마리는 노란 바탕에 흰색이 섞인 녀석이었습니다. 둘 다 태어난 지 두세 주쯤 돼서 눈도 다 뜨고 제법 꼬물거리던 때..

귀농 후기 2026.06.06

추수와 가을 이야기 - 공룡알 만들기

한여름을 지나면 벼는 이삭을 패기 시작합니다. 그 푸르던 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던 이삭이 어느새 묵직해지고, 들판 전체가 황금색으로 물들면서 벼들이 하나둘 머리를 숙이죠. 봄에 모판부터 시작해서 모내기를 하고, 한여름 내내 방제다 비료다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던 그 벼들이 마침내 추수를 맞는 겁니다.저는 강화도에서 영농조합 작업자로 3년을 보냈는데, 그 시절 가장 바빠지던 게 모내기철과 바로 이 추수철였어요. 오늘은 그 추수 이야기를 한번 쭉 풀어볼까 합니다.강화에 2대 밖에 없던 대형 콤바인예전에는 낫 들고 사람이 일일이 벼를 베고 묶어서 말렸다는 이야기를 어른들한테 듣곤 했는데, 지금은 절대 그렇게는 못 합니다. 시간과 품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이제 추수는 거의 다 기계화가 돼서, 장비가 없는 분들..

귀농 후기 2026.06.05

모내기가 끝나면 진짜 여름이 시작된다 — 뜨거운 벼농사 이야기

모내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이어서 벼농사에 대한 여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모내기가 끝나면 한숨 돌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5월에 심은 모들이 자리를 잡고 6월, 7월, 8월을 지나면서 쑥쑥 크는 동안, 논에는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쌓인다. 농약, 비료, 제초, 병 관리, 새 퇴치까지 물론 밭농사에 비하면 그나마 손이 덜가지만 해야할 일을 거르면 수확에 영향이 가기 때문에 한눈을 팔수 없다.. 한여름 벼농사는 논에서 해야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농약을 사람이 주는 줄만 알았는데 무인보트, 비행기도 있었다. 모내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제초제 살포다. 논에 잡초가 올라오기 전에 미리 눌러줘야 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보통 다른 곳들은 사..

귀농 후기 2026.06.01

붉은 콩 씨앗을 심던 날 — 만평 콩밭 농사 이야기

영농조합에서 두번째 해에는 콩 농사를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콩농사는 그냥 논둑이나 자투리 땅에 씨앗을 뿌리면 되는 줄 알았던 내게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콩 씨앗 포대를 가져와서는 큰 다라에 콩을 넣고 소독약을 부어서 열심히 비볐다. 그러자 콩이 빨갛게 되었다. 그리고 잘 건조시켰다. 빨간콩을 그 때 처음 봤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정말 콩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파종 전에 씨앗을 약제로 코팅하면 발아 초기에 병충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보면 좀 낯선 색이지만, 파종철마다 그 붉은 씨앗을 준비할 때마다 이제 "아, 콩농사 시작이구나" 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그렇게 시작한 콩 농사. 만평이 넘는 면적이었다. 뭐 논농사를 10만평이상 하니 그렇게 크게 ..

귀농 후기 2026.05.26

강화도 은근 맛집, 3년 남짓 주민이었던, 기억이 남는 맛

강화도에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음식이 '관광'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어디가 유명하다더라, 블로그에서 봤다더라 같은 건 점점 사라지고, 오늘 뭐 먹어야 내일 또 일어나서 일 할 수 있을까가 기준이 된다. 그 기준으로 하나씩 걸러진 은근 맛집들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지방은 음식이 싸다는 인식이 있는데, 강화에는 그렇게 적용하기 쉽지 않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음식 가격이 비싸서 깜짝 놀라는 겨우도 많았고 숨은 저렴한 식당도 많았기 때문이다. 2천 원짜리 짜장면 집도 있었고, 만 원이 훌쩍 넘는 냉면도 있었다. 다양했다. 다만 확실한 건, 음식에 정성이 들어간 집은 가격이 어떻든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강화 장어, 소금구이를 만난 날강화도 하면 순무나 인삼을 떠올리기 쉬운데, 현지에서 살다 ..

귀농 후기 2026.05.19

한 해 농사가 결정되는 며칠 — 영농조합 모내기의 전 과정

지난번 글에서 모판이 못자리에서 자라 푸른 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봤어요. 부직포까지 걷고 나면 어린 모가 햇볕을 받으며 한참을 자라는데, 그 모가 10~15cm쯤 되면 드디어 본격 모내기 단계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그 모내기의 전 과정을 풀어보려 해요. 현대화된 영농조합에서는 이걸 어떻게 운영하는지, 그 며칠 동안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요. 트랙터가 도는 논, 옛 쟁기 시대의 끝모내기를 하려면 가장 먼저 논을 갈아야 합니다. 예전엔 소가 쟁기를 끌면서 갈았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옛날 얘기예요. 지금은 트랙터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트랙터가 한 번 들어가서 넓은 논을 쓱쓱 돌면서 써래질을 하고 나면 흙이 다 갈려요. 도시 사람이 처음 보면 그 속도에 놀랍니다. 사람 몇십 명이 며칠 걸려야 했을 일을..

귀농 후기 2026.05.17

일년의 농사를 결정한다. 모판이 못자리에 깔리기까지 — 영농조합 봄 작업 풍경

지난번에 "한 알의 볍씨가 모 한 포기가 되기까지"라는 글에서 영농조합 봄 작업의 전체 흐름을 한 번 정리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큰 그림으로 흘러갔는데, 이번에는 사진을 보면서 각 단계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려 합니다. 모들이 발아실에서 싹을 틔우고 못자리에 깔려 푸른 모로 자라기까지 — 실제로 옆에서 작업해보지 않으면 도시 사람들은 알수 없는 부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사실 저도 도시사람이라 이런 건 알지 못했답니다.종자별로 정리된 볍씨 포대들영농조합 창고 한쪽에는 겨울부터 볍씨 포대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종자별로 따로따로 정리된 포대들이 줄지어 놓이는데, 사진에 보이는 건 강화도에서 가장 많이 심는 삼광벼 포대들입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추청도 있고 고시히카리, 찹쌀도 있고 취급한 쌀 종자가 꽤 ..

귀농 후기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