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 후기

추수와 가을 이야기 - 공룡알 만들기

고고파파 2026. 6. 5. 23:11

한여름을 지나면 벼는 이삭을 패기 시작합니다. 그 푸르던 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던 이삭이 어느새 묵직해지고, 들판 전체가 황금색으로 물들면서 벼들이 하나둘 머리를 숙이죠. 봄에 모판부터 시작해서 모내기를 하고, 한여름 내내 방제다 비료다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던 그 벼들이 마침내 추수를 맞는 겁니다.

쓰러진 벼들도 가을에 노랗게 익어간다. 이런 논은 더 신경써서 추수를 해야 한다.

저는 강화도에서 영농조합 작업자로 3년을 보냈는데, 그 시절 가장 바빠지던 게 모내기철과 바로 이 추수철였어요. 오늘은 그 추수 이야기를 한번 쭉 풀어볼까 합니다.

묵직하게 고개를 숙인 이삭, 이맘때가 되면 들판이 황금색으로 바뀐다.

강화에 2대 밖에 없던 대형 콤바인

예전에는 낫 들고 사람이 일일이 벼를 베고 묶어서 말렸다는 이야기를 어른들한테 듣곤 했는데, 지금은 절대 그렇게는 못 합니다. 시간과 품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이제 추수는 거의 다 기계화가 돼서, 장비가 없는 분들은 콤바인을 임대해서 쓰거나 아예 추수부터 건조까지 통으로 맡겨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영농조합에서는 우리가 직접 재배한 논은 우리 장비로 추수하고, 의뢰가 들어오는 논은 작업비를 받고 대신 추수를 해줬습니다. 말하자면 대행을 하는 거죠. 이 대행 면적이 꽤 넓어서 제 기억으로는 10만 평이 넘었던 것 같아요. 농사를 지으면서 들어오는 수입의 한 축이기도 해서, 장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꽤나 경쟁이 치열해서 영업도 해야 하고 관리도 잘해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추수는 콤바인으로 합니다. 벼가 자라고 있는 논에 콤바인이 들어가서 쭉 베어 나가는데, 속도가 워낙 빨라서 웬만큼 큰 논도 한두 시간이면 끝나버려요. 하루에 만 평, 2만 평은 콤바인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콤바인 크기에 따라 다른데, 작은 건 두세 줄씩 베는 것도 있고, 제가 있던 영농조합은 상당히 큰 콤바인을 갖고 있어서 한 번에 일곱 줄을 벴던 걸로 기억해요. 이런 게 한번 쓱 지나가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벼가 베어집니다. 이정도 크기의 콤바인은 강화에서 2대 밖에 없다고 들었답니다. 가격도 어마무시했죠. 고장났을때 수리비도 엄청났고 하여간 대단한 장비였습니다. 이런 콤바인이 그냥 벼만 베는 장비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콤바인은 베면서 동시에 탈곡까지 하기 때문에, 탈곡된 나락은 바로 1톤 차에 실린 큰 톤백에 부어서 건조기로 보낼 수 있도록 작업했습니다.

콤바인이 들어가면 벼가 쓰러져있어도 추수는 문제없다.

그래도 사람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다

기계가 다 해줄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사람 손이 안 가는 데가 없습니다. 경지 정리가 잘 된 논은 콤바인으로 깔끔하게 끝나는데, 그렇지 않은 논은 논둑과 논 모양이 제각각이라 기계가 못 들어가는 사각지대가 꼭 생기거든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낫을 들고 그 테두리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콤바인이 닿지 못한 모서리 부분, 결국 사람이 낫으로 마무리한다

추수철엔 면적도 많고 이런 손질까지 더해지니까 작업자들은 늘 힘듭니다. 그리고 콤바인이 논을 돌면서 베고 탈곡한 나락이 탱크에 가득 차면, 트럭이 다가와서 콤바인의 배출관을 통해 트럭에 실려있는 톤백으로 옮겨 담죠. 그러면 그 트럭이 나락을 잘 담아서 건조기까지 또 싣고 가야 하는 거죠.

콤바인 탱크가 차면 긴 관으로 나락을 트럭 톤백에 옮겨 담는다.

이 운반 과정에서 사건 사고도 종종 일어납니다. 싣고 가다가 톤백이 기울거나 쏟아지는 일이 가끔 생기거든요. 사진에 있는 것도 처음에는 톤백에 잘 싣고 출발했는데 톤백이 넘어져서 바닥에 끌릴 뻔한 경우예요. 다행히 이번엔 끌리지 않아서 터지진 않았는데, 정말 터진 적도 있었고 톤백이 통째로 쓰러진 적도 있었고, 별별 경우가 다 있었습니다. 그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게 됩니다.

톤백이 이동중에 넘어져 바닥에 끌릴 뻔했다. 이런 날은 가슴이 철렁한다.

추수가 끝난 논에 남는 '공룡알'

이렇게 추수를 다 하고 나면 논은 벼가 싹 베어진 채로 휑하니 정리가 됩니다. 그전에 추수할 때 결정할 게 하나더 있습니다. 바로 볏짚을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겁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콤바인이 추수하면서 볏짚을 잘게 잘라 그 논에 바로 뿌려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거름이 돼서 논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땅힘을 키워주는 비료처럼 쓰는겁니다. 대신 볏짚 자체를 따로 활용하진 못하게 되죠. 그래서 다른 하나는 자르지 않고 바닥에 쭉 깔아두는 겁니다.

벼가 다 베어진 논, 가을이 한 차례 지나간 자리

바닥에 깔아둔 볏짚은 따로 장비가 들어와서 모아서 포장을 합니다. 트랙터에 볏짚을 뭉쳐 둥글게 말아 비닐로 싸주는 보조 장비를 달고 들어가서, 깔려 있던 볏짚을 쭉 담아 둥글게 포장하는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진 하얗고 동그란 덩어리들이 논에 줄줄이 놓이는데, 우리끼리는 이걸 속칭 '공룡알'이라고 불렀습니다. 들판에 하얀 공룡알이 쭉 깔려 있는 풍경, 시골 가을 들녘에서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우리끼리 '공룡알'이라 부르던 곤포 볏짚, 가을 들판의 명물이다.

이 공룡알들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닙니다. 젖소나 소를 기르는 축사 쪽으로 사료용으로 팔려나가기도 하고, 볏짚 삼겹살 같은 걸 내는 식당으로 넘어가기도 해요. 들판에 쭉 깔린 공룡알은 다시 트랙터가 집게발을 달고 들어와서 하나씩 들어 올린 다음, 큰 트럭에 차곡차곡 쌓아 운송합니다. 베고 끝이 아니라, 이렇게 볏짚 하나까지 다 일이 되는 거죠.

베는 게 끝이 아니더라

추수라고 하면 그냥 벼 베는 것만 떠올리기 쉬운데, 막상 해보면 베는 건 시작일 뿐이었어요. 사각지대 낫질에, 톤백 운반에, 볏짚 처리까지. 콤바인이 빨라진 만큼 면적이 늘어서, 사람 손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황금 들판이 하루가 다르게 비어가는 그 풍경만큼은,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는 보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솔직히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었답니다.

다음엔 이렇게 추수한 나락을 건조하고, 정미소에 납품하는 과정까지 이어서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가을걷이는 베고 나서가 또 시작이거든요. 진정한 벼농사의 마무리는 수매까지 끝내고 돈이 들어와야 끝나는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