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 때는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게 큰맘 먹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은 달랐습니다. 마당이 있고, 사람보다 동물이 먼저 드나드는 동네라 키울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솔직히 제 의지로 시작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다 어쩌다 보니 식구가 됐죠. 오늘은 강화도 영농조합에서 일하던 시절, 제 곁을 스쳐 간 강아지와 고양이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끝이 마냥 밝은 이야기는 아니에요.
갈색이, 먹는 것만 밝히던 녀석
처음은 강아지 두 마리였습니다. 주변 분이 강아지를 줬는데, 정확히는 제게 준 게 아니라 영농조합에 준 거였어요. 한 마리는 짙은 갈색, 한 마리는 노란 바탕에 흰색이 섞인 녀석이었습니다. 둘 다 태어난 지 두세 주쯤 돼서 눈도 다 뜨고 제법 꼬물거리던 때라, 바닥 에 내려놓으면 앙증맞은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어요.

밝은 색 아이는 주변에 아는 분이 데려가고, 조합에서는 짙은 갈색이를 맡게 됐습니다. 사람을 어찌나 잘 따르던지, 활기차고 성격 하나는 정말 좋았어요. 대신 똑똑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머리 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고,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진심이었어요. 밥그릇만 들면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달려오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도 옆 그릇까지 넘보던 욕심쟁이였죠.
귀엽다고, 묶어 두기가 안쓰럽다고 풀어 놓고 키운 게 화근이었습니다. 천방지축 온 동네를 제집처럼 뛰어다녔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항상 먼저 늘 달려와 안기던 녀석이 보이지 않아 찾아 나섰는데, 길가에 싸늘하게 식은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차에 치인 거였어요. 영농조합이 차로 옆에 있다보니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차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인사사고도 종종 일어났었어요. 그런데 로드킬 사고는 얼마나 일어나는지 가늠도 할 수가 없었죠, 그렇게 싸늘하게 식은 작은 몸을 땅에 묻어 주면서, 시골이라고 동물들이 절대 안전한 건 아니라는 걸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고무다라 집에서 시작한 고양이 5남매
그렇게 한동안 마음을 비우고 지내던 어느 날, 이번엔 조합원 한 분이 고양이 5남매를 데려왔습니다. 어찌나 어린지 눈곱도 제 발로 못 떼는 갓난 녀석들이었어요. 낯선 데 와서 겁에 질렸는지 다섯 마리가 한 덩어리로 엉겨 붙어 떨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가엽던지요. 겁에 질려 밤새 울어대는 모습에 정망 애처로왔답니다.

어찌 되었거나 이제 거두어서 키워야 하는데 다섯이 다 감당이 안 돼서 두 마리는 분양을 보내고, 세 마리만 조합에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게 고스란히 제 일이 됐어요. 영농조합 창고안에 임시로 빨간 고무다라 바닥에 수건을 깔고 집으로 삼았죠. 아직 어려서 다라 밖으로 나오지 못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뛰쳐나와서 사라지면 찾을 방법이 없으니까요. 다라안 바닥 아무 데나 일을 보면 제가 치우고, 사료와 물을 챙기는 것도 다 제 몫이었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면서 정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밖에 꺼내놓아도 이제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도망가지도 않고 해서 이녀석들을 사무실에도 데려오기도 하면서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에 키우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세 녀석이 소파 위에 올라가 나란히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그동안 수발을 드느라고 힘들었던 생각이 싹 잊혀졌답니다. 이렇게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한 번도 없던 제가, 고양이 키우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 갔습니다.

그중에 까망이가 유난히 사람을 잘 따랐어요. 애교도 많고, 제 발소리만 나도 쪼르르 달려와 다리에 몸을 비비던 녀석이라 저도 정이 제일 많이 갔습니다. 일하다 잠깐 앉으면 어느새 무릎에 올라와 잠들어 있곤 했죠. 떨어지기도 싫어하고요.


20만원짜리 영수증, 얼떨결에 집사가 되다
그렇게 정붙이고 지내는데, 검정과 갈색이 섞인 얼룩이 녀석이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두 마리만 남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까망이와 노랑이 털이 갑자기 푹푹 빠지고 상태가 이상해지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난생처음 고양이를 안고 동물병원엘 갔습니다. 진찰받고 약을 지었는데 비용이 20만원이 나오더군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 한 달 월급의 십분의 일이 고양이 약값으로 나간 겁니다. 조합에서 주는 돈도 아니고 온전히 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었죠. 그렇게 저는 얼떨결에 고양이 집사가 돼 있었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약 먹이고 돌봤는데, 까망이마저 사고로 떠났습니다. 키우기 시작한 지 두세 달 만에 두 마리가 다 가버린 거예요. 마지막 남은 노랑이는 더는 잃고 싶지 않아서, 이번엔 목줄을 채워 키웠습니다. 영농조합이라는 데가 차도 쉴 새 없이 드나들고 큰 기계 장비가 계속 오가는 곳이라, 작은 고양이가 깔리는 사고가 정말 잦았거든요. 묶어 두는 게 안쓰러웠지만 그게 그나마 지켜 주는 길이라 믿었어요.
그런데 한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나 싶던 노랑이마저, 결국 사고로 떠나보냈습니다. 육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세 마리를 모두 그렇게 보냈어요.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도, 조합에 와서 만난 녀석들도, 하나같이 제가 먼저 떠나보내야 했으니까요. 그때 다짐했어요. 이제 정 주지 말자고. 더는 키우지 말자고.

정 주지 않겠다던 마당에, 흰둥이가 왔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던 가을이었습니다. 흰둥이가 나타났어요. 제가 키우던 개도 아니고, 어디선가 흘러든 떠돌이였죠. 영농조합 마당에 몇 번 어슬렁거리길래 밥 한 술 챙겨 줬더니, 그날로 아예 눌러앉을 기세였어요. 매일같이 찾아와 꼬리를 흔들고, 이장 어머니가 키우는 강아지와 어울려 신나게 뛰어놀고. 그러다 어느새 마당 식구가 돼 있었습니다.

사실 시골에선 개나 고양이 없이 사는 집을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낯선 사람이 오면 개가 먼저 짖어 알려 주니 든든하고, 주인을 따르는 마음도 깊어 곁에 두는 이점이 많죠. 고양이는 또 고양이대로 쥐를 잡아 주니 제 몫을 합니다. 그렇게 서로 기대 사는 게 시골 마당의 풍경이에요. 머리로는 다 아는 이치였습니다. 다만 저는, 그 끝에 늘 따라오는 이별이 너무 버거웠을 뿐이에요.
흰둥이한테는 일부러 정도 붙이지 않았어요. 빨리 가라고 쫒아내기 까지 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오라고 부르지도 애써 돌보지도 않았는데 녀석은 매일 아침 마당에 와 있었어요. 제가 출근해서 조합에 나타나면 꼬리부터 흔들면서요. 떠난 녀석들 때문에 굳게 닫아 둔 마음에, 흰둥이는 노크도 없이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버린 셈입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흰둥이가 제게 가르쳐 준 게 하나 있어요. 꼭 끌어안고 묶어 둬야만 정인 건 아니라는 거. 곁에 있는 동안 밥 한 끼 나누고, 마주칠 때 반갑게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가 있다는 걸요. 제가 강화를 떠나 도시로 돌아올 무렵, 흰둥이는 여전히 그 마당의 개였습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동네 모두의 식구인, 딱 시골다운 자리였죠. 아마 지금도 어느 마당을 제집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을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면, 자꾸 먼저 떠나보내기만 했던 그 시절이 그래도 조금은 따뜻하게 기억됩니다.

먼저 보낸 녀석들한테는 여태 미안한 마음입니다. 더 잘 지켜 주지 못해서요. 그래도 짧게나마 곁을 내준 그 작은 식구들 덕분에, 외롭던 시골 생활이 덜 외로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서로 의지하는 시골살이를 꿈꾸신다면, 동물과 함께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기쁨만큼 헤어짐의 무게도 같이 온다는 걸 미리 알아 두시면 좋겠습니다. 그 무게까지 안아 줄 수 있다면, 시골 마당은 분명 도시에서 못 누릴 따뜻한 식구들을 선물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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