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 후기

운동회를 기억하게 한 면민의 날, 강진 땡벌이 울려 퍼진 새우젓축제 — 강화도에서 보낸 축제날들

고고파파 2026. 6. 9. 21:01

농사일에 파묻혀 살다 보면 계절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그런데 강화도에서 지내는 동안 의외로 마주친 게 있었다. 바로 축제와 행사다. 많이 다닌 건 아니다. 일하는 처지라 멀리까지 찾아다니며 즐길 형편은 못 됐지만, 가까운 데서 열리는 행사는 짬을 내서 참가했다. 오늘은 그중 기억에 남는 강화도 축제 두 가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학창 시절 운동회가 떠오른 면민의 날

먼저 봄에 있었던 면민의 날이다. 5월 초, 어린이날 바로 전날인 5월 4일에 열렸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지내던 면에서 열린 행사였는데, 강화도는 면마다 이런 면민의 날을 연다. 면 11개 마을의 이장님들과 주민들이 다 모여서 축제처럼 하루를 보내는 자리다. 장소는 면에 있는 학교 운동장이었다.

그해 행사의 주제는 하나된 우리면, 행복한 면민'이었다. 무대 위에 큼지막하게 걸린 그 문구를 보는데, 나처럼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한테는 괜히 더 와닿았다. 내가 살던 면도 사람이 늘면서 원래 살던 분들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자는 뜻이었을 텐데, 따지고 보면 나도 그 '새로 들어온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이런 자리가 그래서 더 고맙게 느껴졌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주민자치센터 풍물동아리가 식전 공연으로 꽹과리며 북을 울리니, 그 장단에 운동장이 금세 들썩였다. 둥둥 울리는 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풍물놀이에 이어 웰빙댄스 같은 개회식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지면서 분위기가 한껏 올라갔다.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옛날 생각이 났다. 하늘에는 만국기가 줄줄이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딱 학교 다닐 때 운동회 그 풍경이었다.

만국기가 하늘을 가득 메운 면민의 날 운동장.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개회식에서는 그동안 면 발전에 애써온 분들에게 표창장과 감사패를 전하는 순서가 있었다. 동네를 위해 묵묵히 일해온 분들을 다 같이 박수로 치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운동장 한쪽에는 몽골 텐트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마을마다 텐트가 배정돼 있어서, 사람들은 그 안에서 쉬기도 하고 둘러앉아 식사도 했다. 텐트마다 사람들이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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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별로 배정된 몽골 텐트가 운동장을 빙 둘렀다. 여기가 각자의 본부 같은 곳이었다.

행사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펼쳐졌다. 오색 풍선을 하늘로 한꺼번에 띄워 올리는 개최식 순서도 있었고, 머리 위로는 드론이 윙윙 날아다니며 그 장면을 찍고 있었다. 풍선이 두둥실 올라가는 걸 다 같이 올려다보던 순간이 묘하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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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풍선이 만국기 사이로 두둥실 떠오른다. 다 같이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

이어진 체육 행사가 진짜 볼거리였다. 제기차기, 투호, 링 던지기, 고무신 양궁에 훌라후프까지, 옛날 민속놀이를 곁들인 여러 종목이 펼쳐졌다. 투호 통에 화살을 던져 넣거나 고무신을 던져 과녁을 맞히는 종목에서는 번번이 빗나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솔직히 내가 어떤 종목에 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나도 어딘가 끼어서 같이 뛰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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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를 돌리며 몸을 푸는 주민들. 한쪽엔 경품으로 걸린 자전거가 줄지어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한을 떠나온 예술인들로 꾸려진 백두한라예술단의 공연은 시골 면민의 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 더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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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차려입은 공연단이 공연중이다.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경품과 상품도 푸짐해서, 자전거 같은 큼직한 선물이 주인을 찾아가기도 했다. 특히 현장에서 추첨하는 경품행사가 하일라이트 였다. 현장에서 호명해서 없으면 바로 아웃, 바로 새 주인을 추첨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11개 마을 이장님들과 부녀회, 여러 기관에서 손을 보탠 자리라 그런지 곳곳에 정성이 묻어났다. 먹거리도 다양하고 사람도 많아서, 오랜만에 사람 사는 정, 마을 잔치의 분위기를 가득 느낀 하루였다.

가을, 외포리에서 만난 새우젓축제

다음은 가을 이야기다. 강화도는 가을이 되면 행사가 많은데, 그중에서 외포리 쪽 축제를 찾아갔다. 외포리는 강화에서 제법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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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대를 가득 메운 인파. 축제의 마지막 밤은 역시 공연이 하이라이트였다.

내가 간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마침 축제 마지막 날이라 그날 저녁 공연이 하이라이트였다. 여러 가수가 무대에 올랐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강진이다. 사진에서는 내가 이름을 기억못하는 가수가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과 같이 어울리는 장면이다. 그리고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강진이 나와서 자기 히트곡인 땡벌을 불렀다. 그 노래를 다 같이 떼창하던 분위기는 지금 떠올려도 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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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환이 늘어선 무대 앞으로 사람들이 빼곡히 모였다. 다들 가수 노래에 푹 빠져 있었다.

지역 축제의 진짜 매력은 역시 먹거리다. 천막마다 통돼지 바비큐, 꼼장어구이, 오징어순대 같은 게 줄줄이 걸려 있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물론 저기서 먹거리를 먹으면서 축제의 정취를 맘껏 즐겼다. 무엇보다 외포리는 새우젓으로 유명한 곳이라, 새우젓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다른 젓갈이며 특산품도 시중보다 싸게 내놓아서, 나도 구경하다가 조금 사 들고 왔다. 이런 데서 사는 건 값도 값이지만 그날의 기분까지 같이 담아 오는 거라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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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마다 내걸린 먹거리 간판들. 고소한 냄새에 발길이 절로 멈춘다.

 

일하는 틈틈이 누린 축제, 그게 더 오래 남는다

사실 강화도에는 이 말고도 유명한 축제들이 있다. 봄에 열리는 고려산 진달래축제도 유명하고 가을에 화개정원 축제도 있다. 다만 나는 일하는 입장이다 보니, 시간 내서 이 축제 저 축제 다 찾아다니지는 못했다. 축제들이 농번기랑 겹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데 이번에는 일요일밤에 잠깐 들른 경우다. 그렇게 가까운 데서 열리는 행사에 짬을 내 참가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오히려 그렇게 일하다 잠깐 빠져나와 즐긴 축제가 더 진하게 남는 것 같다.

도시에 살 땐 축제라고 하면 어딘가 남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강화도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다 같이 만들고 즐기는 자리라 거리가 가까웠다.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장에서 풍선을 올려다보고, 가을 저녁 무대 앞에서 땡벌을 따라 부르던 그 시간들. 농사로 몸은 고됐어도, 그 사이사이 끼어 있던 이런 하루들이 강화도 생활을 버티게 해준 게 아닌가 싶다. 혹시 강화도 여행이나 귀촌을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면민의 날 같은 동네 행사나 가을 새우젓축제 같은 지역 축제를 한 번쯤 일정에 넣어보시길 권한다.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