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 후기

모내기가 끝나면 진짜 여름이 시작된다 — 뜨거운 벼농사 이야기

고고파파 2026. 6. 1. 20:51

모내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이어서 벼농사에 대한 여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모내기가 끝나면 한숨 돌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5월에 심은 모들이 자리를 잡고 6월, 7월, 8월을 지나면서 쑥쑥 크는 동안, 논에는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쌓인다. 농약, 비료, 제초, 병 관리, 새 퇴치까지 물론 밭농사에 비하면 그나마 손이 덜가지만 해야할 일을 거르면 수확에 영향이 가기 때문에 한눈을 팔수 없다.. 한여름 벼농사는 논에서 해야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농약을 사람이 주는 줄만 알았는데 무인보트, 비행기도 있었다. 

모내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제초제 살포다. 논에 잡초가 올라오기 전에 미리 눌러줘야 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논 위를 다니며 제초제를 살포하는 무인 보트. 초기 방제는 이걸로 시작했다.

보통 다른 곳들은 사람이 약을 뿌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농조합에는 무인 보트를 사용했다. 대규모의 농사를 짓다보니 사람이 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서 도입했다고 했다. 사람이 논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논 바깥에서 조이스틱으로 보트를 조종하면서 농약을 뿌리는 방식이다. 보트 약통에 농약을 타서 넣고, 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고르게 살포하는 건데 —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만만하지 않다. 농약 농도를 잘 맞춰야 하고, 한 번 채운 농약으로 논 전체를 커버할 수 있게 보트를 운행하는 시간 안배를 해야 한다. 중간에 농약이 떨어지면 다시 나와서 채우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러면 이미 뿌린 곳과 나중에 뿌린 곳의 농도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거기에다 배터리도 항상 전날 충전해 놔야 했다. 한번은 배터리가 방전돼서 논 한가운데 보트가 멈춰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꺼내러 들어가는 것도 일이었다. 그리고 보트를 조종하다보면 회전하다가 논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경우 생각보다 많았다. 원심력을 감안해서 회전해야 하는데 아차하는 순간에 보트가 논둑에 올라가거나 논밖으로 나가 버리는 수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보트에 충격이 가해져서 선체가 망가지거나 농약배출 시스템이 고장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리고 몇번 고장을 내기도 했다.  

한 명은 줄을 끌어주고 한명이 농약을 뿌리면서 논 안에서 방제하는 모습.

 

그러나 모든 부분을 자동화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직접 호스를 끌고 논 안을 다니며 농약을 치는 방식도 썼다. 벼가 많이 자랐을 경우 보트를 쓸 수 없어서 사람이 들어가 농약을 줘야 했다. 물론 장비가 있으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장비가 없을 경우는 결국 사람이 할 수밖에 없었다. 

 

농약 살포 경비행기. 여러 각도에서 찍어서 모아봤다.

면적이 더 넓은 평야지대의 논에서는 경비행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내가 있던 영농조합은 저런 비행기를 사용하지는 않았고 주변 논들에서 작업하는 것을 찍어봤다. 하늘에서 낮게 날면서 넓은 범위에 농약을 뿌리는 방식인데, 비행기가 뜨면 근처에 있어서는 안 된다. 위에서 뿌리는 농약의 양이 많고 넓게 퍼지기 때문에, 작업 중에는 일정 거리를 두고 피해 있어야 했다.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처음봤을 때는 정말 신기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귀를 막아야 했다.

진흙 속 50킬로를 짊어지다 — 비료 주기

어느 정도 벼가 자라면 비료도 줘야 한다. 알갱이 형태의 비료를 논에 뿌리면 물에 녹으면서 영양분이 흡수되는 방식이다.

작업자들이 비료살포기를 등에 메고 논안을 다니면서 비료를 주고 있다.

초창기에는 이게 완전히 사람 노동이었다. 동력분무기를 등에 짊어지고 논 안을 다니면서 비료를 살포했는데, 기계 무게만 15킬로 정도에 비료를 채우면 한 포대가 20킬로다. 많을 때는 두 포대 가까이 넣는 경우도 있어서 50킬로가 훌쩍 넘는 무게를 지고 다닌 셈이다. 문제는 논 바닥이 진흙이라 발이 계속 빠진다는 거다. 단단한 논은 그나마 나은데, 새로 조성한 논이나 진흙이 많은 논은 허벅지까지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무게를 지고 허벅지까지 빠지면서 걷는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나는 3000평의 논에 비료를 주다가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기 직전에 중간에 그냥 서서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서 눈물을 흘린적도 있었다. 결국 한참을 서있다가 악으로 깡으로 나올수 있었다. 그 넓은 논 한가운데서 누가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막막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승용관리기가 논 사이를 지나가며 비료를 살포하는 모습. 이게 생기고 나서 일이 달라졌다.

내가 영농조합에 온 두번째 해에 승용관리기를 도입했다. 뒷부분에 긴 봉이 달린 비료 살포기가 달려있는데 이게 정말 걸작이었다. 사람이 기계를 운전하면서 논 안을 이동하고 뒤쪽 봉이 좌우로 움직이며 에어로 벼 이삭거름 비료를 쏘아주는 방식이다. 처음 이걸 써봤을 때 진심으로 감동이었다. 사람이 살포기를 짊어지고 다닐 때랑 비교가 안 될 만큼 수월했다. 비싼 장비지만, 넓은 논을 이녀석이 책임지게 되었고 논 한가운데에서 멈춰섰던 악몽은 이녀석 때문에 다시는 생기지 않았다. 물론 모든 논에 이 장비를 쓰는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그 효율 차이는 직접 경험해 봐야 안다.

태풍이 와도 제초는 멈추지 않는다

비가 오면 쉬고 싶지만 일정이라는 게 날씨를 봐주지 않는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노란 우비를 입고 논두렁 제초 작업 중.

논둑 제초는 일정에 맞춰 해야 하기 때문에 날씨가 나빠도 어쩔 수 없이 나간 날이 많았다. 노란 우비를 걸치고 비바람 속에서 제초기를 돌렸다. 제초기를 메고 작업을 하다보면 돌이 튀어서 다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보안경은 필수였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안 쓰다가 한번 얼굴 근처에 돌이 날아온 이후로는 반드시 챙겼다. 여름이라 습하고 더운 데다 비까지 맞으면 우비 안이 찜통이 된다. 보안경까지 쓰고 정말 힘들었다. 잠깐만 작업해도 땀으로 흠뻑 젖는다. 씻은 건지 비 맞은 건지 땀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하필 이날은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강행군으로 논두렁 제초를 진행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그나마 햇볕이 없어서 좀 나았다. 그리고 하루종일 제초기를 돌리면 손이 덜덜 떨린다. 식사할 때 숟가락을 쥐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농촌일은 쉬운게 하나도 없었다.

날이 습하면 병이 온다.

벼 이파리 끝이 타들어가는 병 증세. 도열병으로 보인다.

벼농사는 잡초와 함께 병도 계속 신경써야 한다. 날이 뜨겁고 햇볕이 쨍쨍하면 그나마 병이 덜하다. 하지만 볕이 부족하고 습하면 벼 이파리가 점점 타들어가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도열병일 가능성이 높다. 날씨와 온도의 영향을 받는 데다가 벼멸구 같은 해충이 병을 퍼뜨리는 경우도 있어서,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번진다. 한 논에서 발견하면 주변 논들까지 같이 방제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물론 농업기술센터에서 공무원들이 다니면서 병충해 발생여부도 체크하고 발생시 방제 안내도 해주고 하지만 직접 관리를 해야한다. 빠르게 확인하고 선제적으로 대응을 해야 조기에 병해충을 처리하고 손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때를 놓치면 피해가 커지기 때문에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제대로 알았다.

 

벼가 여물기 시작하면 새가 달려든다

이삭이 패기 시작한 논. 여기서부터는 새와의 싸움이다.

8월이 넘어가면서 이삭이 패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논이 초록에서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벼가 고개를 숙이는 그 풍경은 맘이 평화로와지고 수확의 기대도 커지게 된다. 그렇지만 새들도 그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논 가장자리에 설치된 조류 퇴치 장치. 일정 시간마다 펑펑 소리를 낸다.

그래서 설치하는 게 이 빨간 장치다. 일정 시간마다 총 쏘는 소리처럼 펑펑 소리를 내서 새들을 쫓는 장치인데, 평야 한가운데에 설치해 놓으면 멀리서도 소리가 들린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논 주변을 지나다가 갑자기 펑 소리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는 설치할 수 없고 논 한가운데에 놓아야 해서, 위치 잡는 것도 신경을 썼다. 설치하고 가까이서 테스트를 할때는 귀를 막아야 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정말로 고막이 나갈수도 있다.

이삭이 패인 벼, 이대로만 가면 풍년이다.

이렇게 한여름의 벼농사 관리를 다 하고 나면 수확의 계절이 온다. 논에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파랗던 논들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고개숙인 벼들을 베러 콤바인이 들어오는 그 날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따로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