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 후기

강화도 은근 맛집, 3년 남짓 주민이었던, 기억이 남는 맛

고고파파 2026. 5. 19. 22:38

강화도에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음식이 '관광'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어디가 유명하다더라, 블로그에서 봤다더라 같은 건 점점 사라지고, 오늘 뭐 먹어야 내일 또 일어나서 일 할 수 있을까가 기준이 된다. 그 기준으로 하나씩 걸러진 은근 맛집들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지방은 음식이 싸다는 인식이 있는데, 강화에는 그렇게 적용하기 쉽지 않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음식 가격이 비싸서 깜짝 놀라는 겨우도 많았고 숨은 저렴한 식당도 많았기 때문이다. 2천 원짜리 짜장면 집도 있었고, 만 원이 훌쩍 넘는 냉면도 있었다. 다양했다. 다만 확실한 건, 음식에 정성이 들어간 집은 가격이 어떻든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강화 장어, 소금구이를 만난 날

강화도 하면 순무나 인삼을 떠올리기 쉬운데, 현지에서 살다 보면 장어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장어집에 자주 갈 형편은 아니었지만, 한번 가보고 나서는 왜 사람들이 거기까지 찾아가는지 이해가 됐다.

기름이 좔좔 장어소금구이

처음엔 양념구이를 시키려 했는데, 옆에서 소금으로 드세요 라고 권해줘서 반신반의하며 소금구이로 바꿨다.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장어가 기름을 머금으면서 노릇하게 변해가는 그 모습만 봐도 이미 배가 고파졌다. 한 점 집어 입에 넣는 순간—두툼하고 기름진데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양념이 없으니 장어 자체의 맛이 그대로 올라오는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임팩트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장어는 소금구이'가 내 기준이 됐다.


바닷바람 맞으며 먹은 시래기밥 한 상

이 집은 좀 독특했다. 실내 식당이 아니라 바닷가 근처에 나무로 지어진 야외 공간에 테이블이 놓여 있는 구조였는데, 앉아 있으면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여름에는 그냥 그 자체로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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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밥이 고급음식인줄 몰랐다.

반찬이 열두 가지가 넘게 나온다. 검은콩 조림, 멸치볶음, 산나물 서너 가지에 볶음에 절임까지—가짓수를 세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시래기밥은 뭔가 특별한 음식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막상 한 숟가락 떠서 먹으면 시래기 특유의 구수한 향이 올라오면서 국이랑 같이 넘길 때 그 조합이 딱 맞아 떨어진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 편하게 많이 먹게 되는 그런 밥이다. 반찬을 이것저것 올려가며 밥 두 공기 비우는 게 어렵지 않았다.


강화군이 직접 인정한 중국집

'강화군이 인정한 맛있는 음식점'이라는 공식 인증 간판이 붙어 있는 중국집인데, 처음에는 그 간판이 진짜인지 그냥 인테리어인지 반신반의했다. 들어가서 짜장면을 시켰는데—옛날 짜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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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이 다 맛있는 중국집

요즘 짜장이랑은 다르게 면발이 두툼하고 쫄깃쫄깃하다. 소스도 달달하면서 짭짤하게 묵직하게 올라앉는 그 맛인데, 한동안 서울에서 먹던 짜장과는 결이 달랐다. 짬뽕도 얼큰하면서 국물이 시원하게 제대로였고, 탕수육도 거를 수가 없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고기에 소스가 적당히 흥건하게 배어들고 채소가 씹히는 그 조합— 갈 때마다 탕수육을 안 시키고 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집이 운영 중이라면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은 집 1순위다. 짜장면은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아는 사람만 찾아가던 냉모밀 한 그릇

여름에 논 작업을 하다가 더위를 먹으면 뭘 먹어도 입맛이 없다. 밥도 안 들어가고 고기는 더 엄두가 안 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때 냉모밀 한 그릇을 앞에 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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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아닌것 같지만 별미인 냉모밀국수

이 집은 큰길가에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알려줘서야 겨우 찾아갔는데, 가게 외관은 아주 작고 소박했다. 그냥 지나치면 식당인지도 모를 정도. 근데 그 안에서 나온 냉모밀 국물이 맑고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깊었다. 메밀 면 특유의 거칠거칠한 식감이 살아 있고, 쫄깃한 식감이 정말 일품이었다. 한 젓가락 들어올려 국물에 찍어 먹으면 더위가 그냥 한 방에 씻겨 나가는 느낌. 단순하고 담백한 것 그게 다인데, 여름 오후에 그 한 그릇이 주는 청량함은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다. 한 번 가고 나서는 그쪽 방면으로 갈 일이 생기면 무조건 들렀다.


초지대교 건너 대포항, 수철이네 새우튀김

강화 초지대교를 건너면 대포항이 있는데, 거기 수철이네 왕새우튀김 본점이 있다. 차로 왕복 40분은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래도 몇 번이나 거기까지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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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새우튀김 고급음식이다.

새우가 크고, 튀김옷이 두툼하지 않고 얇게 바삭하게 입혀져 있다. 새우 자체의 단맛이 살아 있어서 튀김옷에 가려지는 느낌이 없다. 포장해서 가져와도 한동안 눅눅해지지 않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가격은 절대 저렴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비싸다'는 기분이 안 드는 집이었다. 함께 주는 스위트칠리소스에 찍어 먹으면 새우 맛이 한층 살아나면서 달달함이 더해지는데, 이게 또 조합이 맞다. 시간 나면 사 와서 먹고, 또 시간 나면 또 가는 그런 집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기 한 점, 냉면 한 그릇

농사일이 많은 날 저녁에는 어김없이 고기가 생각났다. 힘든 하루에는 고기에 소주한잔이 정석이 아닌가. 삼겹살도 자주 갔고, 양념갈비도 몇 번 갔는데—양념갈비는 갈비 자체에 양념이 깊숙이 배어 있고 불 위에서 굽다가 가장자리가 살짝 탄 부분이 오히려 더 고소하고 맛있었다. 냉면을 곁들이면 뜨거운 고기와 차가운 면이 번갈아가며 입을 채우는 그 느낌이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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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단짝 돼지갈비와 물냉면

일을 마치고 땀 냄새 배어 있는 옷 그대로 들어가서 고기 구워 먹고 냉면 한 그릇 비우면, 하루 피로가 반은 날아갔다. 다음날 또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행복했다. 한국 사람은 고기없이 못사는 게 국룰 아닌가.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먹지않고는 못배기는 그런 음식. 하지만 맛있게 잘하는 집에가면 그날은 정말 행복한, 그런 음식 아닌가 싶다.


강화 고구마는 속이 노랗다

강화도 특산품 하면 순무, 인삼 같은 것들이 먼저 나오지만, 고구마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 고구마는 겉은 보랏빛인데 쪼개보면 속이 노랗다. 호박고구마 계열이라 단맛이 강하고, 쪄내면 속이 촉촉하게 눅진눅진하면서 달달하다. 이 고구마를 찾아 멀리서 오는 분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선물로도 많이 찾는 그런 고구마로 제법 인기가 많은 그런 아는 사람만 아는 맛있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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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노란 강화속노랑고구마

우리도 직접 고구마를 키웠다. 수확하고 나서 쪄 먹는 날은 그게 간식이었다. 밖에서 일하다가 들어와서 따뜻하게 쪄진 고구마 하나 집어 들면 그냥 한 끼 대신이 됐다. 서울로 올라와서 가끔 마트에서 강화 고구마를 발견하면 반가워서 손이 먼저 가는데, 그 노란 속을 보면 3년의 기억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돌이켜보면 뭐 대단한 미식 여행은 아니었다. 화려하거나 독특하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일하고 배고프고 지친 사람이 찾은 밥집들이다. 근데 땀 흘리고 나서 먹는 밥 한 그릇은 어디서 먹어도 맛있다. 강화도가 그 배경이었을 뿐이고.

그 평범함 속에 들어 있던 정성—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