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 후기

일년의 농사를 결정한다. 모판이 못자리에 깔리기까지 — 영농조합 봄 작업 풍경

고고파파 2026. 5. 16. 00:31

지난번에 "한 알의 볍씨가 모 한 포기가 되기까지"라는 글에서 영농조합 봄 작업의 전체 흐름을 한 번 정리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큰 그림으로 흘러갔는데, 이번에는 사진을 보면서 각 단계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려 합니다. 모들이 발아실에서 싹을 틔우고 못자리에 깔려 푸른 모로 자라기까지 — 실제로 옆에서 작업해보지 않으면 도시 사람들은 알수 없는 부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사실 저도 도시사람이라 이런 건 알지 못했답니다.

종자별로 정리된 볍씨 포대들

영농조합 창고 한쪽에는 겨울부터 볍씨 포대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종자별로 따로따로 정리된 포대들이 줄지어 놓이는데, 사진에 보이는 건 강화도에서 가장 많이 심는 삼광벼 포대들입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추청도 있고 고시히카리, 찹쌀도 있고 취급한 쌀 종자가 꽤 많았습니다. 국립종자원에서 받아 오는 20kg 포대로 되어 있었답니다. 한 시즌 동안 영농조합에서 쓰는 양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게다가 발아, 모, 모내기까지 맡기는 분들도 많아서 그 양까지 합하니 저렇게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볍씨가 그대로 모판에 뿌려지느냐. 그건 아니에요. 먼저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온탕 소독기에 그물망 단위로 담가서 종자 표면의 균과 해충 알을 제거하고, 약제 소독으로 이틀 정도 더 담가서 추가 소독을 한 다음, 깨끗한 물로 헹궈서 약제 잔여물을 제거해요. 이 부분은 지난 글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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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로 쓰일 볍씨들과 소분된 볍씨들

탈수기를 거쳐 모판으로 갈 준비

소독·헹굼이 끝난 볍씨는 그대로 모판에 뿌릴 수 없어요. 물기를 먼저 빼야 합니다. 여기에 쓰는 게 탈수기예요. 사진에 보이는 스테인리스 통 모양의 기계가 그거예요. 빨간 망에 담은 볍씨 자루를 통 안에 넣고 한참 돌리면 물이 쫙 빠집니다.

탈수가 끝난 볍씨는 빨간 망에 담긴 채로 그대로 옮겨져요. 사진에 보이는 주황색 자루들이 그 모습입니다. 옆에 쌓여 있는 자루들이 한 번 작업할 분량인데, 이게 모판 파종 라인으로 들어갈 준비가 끝난 볍씨예요. 싹이 살짝 튼 상태에서 망에 담겨 보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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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이 된 볍씨들을 탈수 하고 있다.

 

 

컨베이어 라인 위에서 돌아가는 봄

모판 파종은 한마디로 공장 라인이에요. 컨베이어 위에 빈 모판이 줄지어 들어오면 그 위에 상토(모판용 흙)가 자동으로 깔리고, 그 위에 볍씨가 뿌려지고, 그 위에 다시 상토가 덮이고, 마지막에 물이 충분히 주어집니다. 라인 끝에서 완성된 모판이 나오면 사람이 받아서 팔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는 거예요.

여기서 톤백을 다루는 작업이 정말 만만치 않은 자리입니다. 상토는 톤백 단위로 라인 위쪽 큰 함에 부어줘야 하는데, 톤백 자체가 워낙 크고 무거워요. 지게차로 들어 올려서 함 위에 가져다 놓은 다음,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톤백 아래쪽 묶음을 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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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에 상토를 공급하는 장치

 

문제는 이게 한 번에 깔끔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흙이라 습기가 있으면 뭉쳐서 잘 안 내려옵니다. 그래서 사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이 긴 막대기를 들고 윗부분에서 계속 흙을 풀어주면서 잘 내려올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라인이 한 번 멈추면 전체 일정이 밀리기 때문에, 톤백 작업은 봄 시즌 내내 긴장이 떠나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사다리가 바로 그 작업에 쓰이는 사다리예요.

저는 영농조합 봄 시즌 동안 모판 작업의 거의 모든 과정을 두루 경험했어요. 라인 끝에서 모판 받아 쌓는 일, 사다리 위에서 톤백 다루는 일, 팔레트에 모판 옮기는 일, 못자리 깔러 나가는 일까지 한 자리에 고정되지 않고 사람이 부족한 자리에 그때그때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자리가 특별히 힘들다기보다, 한 시즌 전체가 통째로 빡빡한 작업이라고 기억해요.

팔레트에 쌓아 비닐 랩핑, 그리고 발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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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실로 옮긴 모판들과 모가 싹이 나고 있다.

 

라인을 빠져나온 모판은 사람 손으로 받아 팔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한 팔레트에 모판이 충분히 쌓이면 비닐 랩핑으로 통째로 감싸요. 그래야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거든요. 그렇게 랩핑된 모판 더미를 그대로 발아실로 옮깁니다.

사진에 보면 비닐 랩핑된 모판 더미들이 창고 안에 여러 줄로 쌓여 있는 모습이 있어요. 그게 발아실 안에서 며칠 동안 적절한 환경에서 싹을 틔우는 단계입니다.

발아실에서 싹이 트는 순간

발아실 안의 모판 풍경은 사진에 단계별로 남아 있어요.

처음에는 흙 위로 흰 싹이 짧게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싹이 좀 더 길어지면서 노란빛에 가까운 색을 띠고, 또 며칠 지나면 녹색이 섞이기 시작해요. 사진 순서를 따라가면 그 변화가 한눈에 보입니다. 어둠 속에서 흙을 뚫고 흰 싹이 올라오고, 빛을 만나면서 점점 푸르게 변해가는 과정이에요.

이 단계가 며칠 걸립니다. 영농조합 발아실에서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서, 모든 모판의 발아 시점이 비슷하게 맞춰지도록 관리해요. 한 시즌에 모판 2만 장이 넘게 돌아가니까, 발아 타이밍이 어긋나면 못자리 일정 전체가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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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이 자라는 모습

못자리, 어린 모가 자라는 야외 공간

싹이 어느 정도 튼 모판은 발아실에서 못자리로 옮겨져요. 못자리는 미리 준비해둔 야외 공간이에요. 평평한 자리를 잡아 모판이 고르게 놓일 수 있도록 정리하고, 물 관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둬야 합니다.

사진에 보면 논에 하얀 부직포가 길게 깔려 있고, 그 위에 모판을 줄지어 놓는 작업 풍경이 있어요. 영농조합 식구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모판을 받아 깔아 나가는 모습입니다. 빠르게 옮기지 않으면 어린 모가 햇볕에 손상될 수 있어서, 이 작업도 시간 압박이 따라옵니다.

옮긴 모판 위에는 다시 부직포를 덮어요. 부직포는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어린 모를 보호해서 추운 날씨에 얼지 않게 하고, 햇볕은 어느 정도 통과시켜서 광합성에 필요한 빛을 받을 수 있게 해줘요. 이 상태로 한참을 두면 모가 부직포 안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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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에 모판을 깔고 있다. 부직포로 덮는 작업까지 해야 일이 끝난다.

부직포를 걷고 푸른 모를 만나는 날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부직포 안쪽이 들뜨기 시작해요. 이파리가 부직포를 밀어 올리는 거예요. 그때가 부직포를 걷는 시점입니다.

부직포를 걷어내면 사진처럼 푸른 싹이 가지런히 자라 있는 모습을 만나게 돼요. 사실 부직포를 걷을 때 걱정반 기대반이랍니다. 모들이 건강하고 잘 자라 있어야 한해 농사가 걱정이 없는데 모들이 상태가 안좋으면 그 때부터는 비상인 것이죠. 어떻게든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내기가 잘 될수 있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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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 자라서 부직포를 걷고 본격적으로 햇볕을 받게 한다.

 

사진에서 보듯이 모들은 어둠 속에서 흰 싹으로 시작해, 발아실에서 노란빛을 거쳐, 못자리에서 햇볕을 받아 짙은 녹색으로 자란 모습입니다. 한 알의 볍씨가 푸른 모 한 포기가 되기까지의 변화가 사진에 단계별로 남아 있어요.

이 모가 10~15cm 정도 자라면 드디어 모내기 단계로 갑니다. 못자리에서 모판을 거둬 모내기할 논으로 옮겨서 본격적인 이앙 작업이 시작돼요.

벼농사의 시작, 그리고 다음 단계

이렇게 한 알의 볍씨가 푸른 모가 되기까지, 영농조합에서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들어갑니다. 종자 정리, 소독, 헹굼, 탈수, 모판 파종 라인, 발아실, 못자리, 부직포 관리, 그리고 본격 모내기까지. 도시에서 마트에서 쌀 한 포대를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알수없는 수많은 작업들이에요. 쌀이 이렇게 많은 정성을 가지고 키워야 하는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답니다. 많은 분들이 쌀 한톨에 농민들의 정성과 수고가 들어간다는 것을 보고 공감해 준다면 제가 이 글을 쓰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드디어 이 모를 가지고 논에 옮겨 심는 본격 모내기 — 이앙 작업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한 시즌 농촌의 봄을 가장 분주하게 만드는 그 며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