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후기

한 해 농사가 결정되는 며칠 — 영농조합 모내기의 전 과정

고고파파 2026. 5. 17. 17:52

지난번 글에서 모판이 못자리에서 자라 푸른 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봤어요. 부직포까지 걷고 나면 어린 모가 햇볕을 받으며 한참을 자라는데, 그 모가 10~15cm쯤 되면 드디어 본격 모내기 단계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그 모내기의 전 과정을 풀어보려 해요. 현대화된 영농조합에서는 이걸 어떻게 운영하는지, 그 며칠 동안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요.

 

트랙터가 도는 논, 옛 쟁기 시대의 끝

모내기를 하려면 가장 먼저 논을 갈아야 합니다. 예전엔 소가 쟁기를 끌면서 갈았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옛날 얘기예요. 지금은 트랙터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트랙터가 한 번 들어가서 넓은 논을 쓱쓱 돌면서 써래질을 하고 나면 흙이 다 갈려요. 도시 사람이 처음 보면 그 속도에 놀랍니다. 사람 몇십 명이 며칠 걸려야 했을 일을 트랙터 한 대가 몇 시간에 끝내거든요. 농촌의 풍경이 기계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게 이런 장면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요.

물을 댄 논에서 써래질을 하는 빨간 트랙터와 멀리 보이는 산
써래질 중인 트랙터

 

흙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2~3일, 그리고 수평

논을 갈았다고 바로 모내기를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갈아 놓은 흙이 물 속에 부드럽게 가라앉을 때까지 2~3일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 사이에 비료도 뿌리고 물도 적절히 채워둬요.

그런데 써래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따로 있습니다. 바로 수평 맞추기예요. 논의 한쪽이 깊고 다른 쪽이 얕으면, 나중에 벼농사 짓는 동안 어느 자리는 물에 잠기고 어느 자리는 물이 모자라서 모가 말라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논 전체의 수평을 일정하게 맞추어 트랙터로 써래질 하는게 정말 중요합니다. 영농조합에서 이 논을 가는 작업을 할때는 운전하는 운전자가 하루에 10시간 이상 작업을 해야해서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수평을 맞추는 써레질을 잘하는 사람이 요즘 기계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같은 논, 같은 모를 심어도 수평이 어긋난 논과 잘 잡힌 논은 한 해 농사 결과가 차이 난다고 들었습니다. 

물이 찬 논을 써래질하며 지나가는 트랙터
논을 트랙터로 써래질 하고 있다.

모판을 옮기는 손, 경지 정리가 만드는 차이

논 준비가 끝나면 못자리에서 자란 모판을 모내기할 논으로 옮겨야 합니다. 여기서 경지 정리가 잘 돼 있느냐 아니냐가 작업 강도를 결정해요.

경지 정리가 잘 된 논 —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논 — 같은 경우는 옆길까지 트럭으로 모판을 실어 와서 바로바로 깔 수 있어요. 그러면 일이 한결 수월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1톤 트럭에 모판을 층층이 쌓아 실은 모습이 그거예요. 저렇게 바로 논 옆에서 모판을 내려 놓을 수 있어서 일이 정말 수월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 다음 사진을 보면 압니다.

모판을 층층이 쌓아 실은 1톤 트럭이 논 옆에 서 있는 모습
트럭으로 못자리에서 모판을 가져다 놓고 있다.

 

그런데 경지 정리가 안 된 논은 이야기가 달라요. 트럭이 들어갈 수 없으니까 사람이 일일이 손수레로 모판을 날라야 합니다. 진흙길을 걷거나 좁은 논둑을 따라 손수레를 끌어야 하는데, 이게 정말 힘듭니다. 모판 한 장이 가볍지 않고, 한 논에 들어가는 모판 양도 적지 않거든요. 수레라도 들어가면 다행입니다. 그렇지 못한곳은 사람이 모두 들어서 날라야 합니다. 그런 날은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난답니다.

손수레에 모판을 싣고 논둑길을 걷는 두 사람논 가장자리에 쌓아 둔 모판 상자와 줄지어 놓인 푸른 모판
모판을 옮기는 작업과 모내기 직전의 모습

 

그렇게 옮긴 모판을 논 가장자리에 쭉 놓아두면, 이제 이앙기가 들어가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앙기, 2인의 호흡

이앙기 작업은 1인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2인이 함께 타는 경우도 있어요. 영농조합에서는 보통 2인이 호흡을 맞춰 작업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앙기를 운전합니다. 가지런한 간격으로 줄을 맞춰 모를 심어 나가는 일이라 집중력이 필요해요. 다른 한 사람은 뒤쪽 모판 받침대 옆에 서서 작업을 보조합니다. 모판에서 모가 잘 빠져 나가도록 계속 밀어주고, 모가 떨어지거나 어긋나지 않게 관리하는 역할이에요. 새 모판으로 갈아 끼우는 일도 같이 합니다.

이렇게 2인 호흡으로 작업하면 속도가 정말 빨라요. 이앙기 한 대가 하루에 상당한 면적을 심어 나가는 것이 이앙기 작업의 위력입니다.

두 사람이 탄 이앙기가 논에 모를 심고 있는 모습이앙기가 모를 심으며 지나간 논에 모 줄이 길게 남아 있는 모습
이앙기를 사용한 모내기 작업

 

동시에 굴러가는 보조 작업들

이앙기 한 대가 작업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없어요. 동시에 여러 작업이 평행으로 진행됩니다.

못자리에서는 계속 모판을 거둬 와야 해요. 이앙기가 모를 다 쓰면 바로바로 새 모판이 옆에 와 있어야 작업이 멈추지 않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못자리에서 모판을 거두고, 누군가는 그걸 차에 싣고, 누군가는 논 옆까지 옮기고, 누군가는 빈 모판을 정리하고 —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입니다.

빈 모판도 그냥 두지 않아요. 바로바로 정리해놔야 마무리하고 바로 끝낼 수가 있답니다.

해 질 무렵 못자리 풍경을 보면, 푸른 모판이 빠져나간 자리에 트랙터가 지나간 진흙 자국만 줄지어 남아 있어요. 한 해 농사를 시작한 자리에 빈 흙만 남는 그 풍경이 묘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모판을 거둬 간 못자리에 바퀴 자국이 길게 남고 푸른 모판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모습
모를 거둬간 못자리

새참 막걸리는 아니어도, 신경은 그대로

예전 농촌의 모내기 풍경 하면 떠올리는 그림이 있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손으로 모를 심고, 새참 시간에 막걸리를 한 사발씩 돌리고, 그날 밤엔 잔치처럼 모이는 풍경. 영농조합의 모내기는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요.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하고, 사람은 그 기계를 보조하면서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어요. 한 해 농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는 점이요. 이 며칠 동안 어떻게 심었느냐에 따라 그 해 가을 추수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영농조합 식구들도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최대한 열심히 움직였어요. 새참 막걸리는 아니어도, 한 해의 무게가 그 며칠에 다 실려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작업자 두 명이 못자리에서 모판을 정리하는 모습
못자리에서 모판 정리 중인 작업자들. 비가 와서 우비를 입고 있다.

다음 단계로 — 논 관리와 약 주기

이렇게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그 다음 단계가 또 기다리고 있어요. 심은 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물 관리도 해야 하고, 농약과 비료도 적절한 시기에 줘야 합니다. 모내기 이후의 논 관리 이야기(제초, 비료, 병해충 방제, 새 쫓기)는 「모내기가 끝나면 진짜 여름이 시작된다 — 뜨거운 벼농사 이야기」에 적었습니다. 한 해 농사가 가을 추수까지 가는 동안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손이 들어가는지 —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수정 이력

2026년 10월 9일: 이앙기의 하루 작업 면적과 축구장 환산 설명을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뺐고, 전해 들은 말은 들었다고 구분해 적었습니다. 관련 글 링크와 사진 설명을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