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 후기

시골에는 농사꾼만 사는 게 아니더라, 강화도에서 본 다양한 삶의 모습

고고파파 2026. 5. 3. 10:25

비료 살포기 메고 진흙뻘에 빠져서 "내가 뭐 하러 여기 왔지" 하던 그날 이야기로 지난 글을 마무리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다음 날 짐 싸서 다시 서울로 올라갈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서 첫날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발견에 대한 이야기예요.

일은 끝이 없었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시골에는 농사꾼만 사는 게 아니더라, 강화도에서 본 다양한 삶의 모습
한여름에 논둑 잡초 제거 작업을 마치고

 

영농조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직접 경작하는 논과 밭만 챙기는 게 아니었어요. 경작 대행 일도 만만치 않게 많았습니다. 모내기, 볍씨에서 모종 키우기, 논 갈기, 밭 갈기, 비닐 씌우기, 파종, 비료, 농약, 수확, 건조까지. 일 종류를 적어보면 정말 끝이 없더라고요. 저는 그 모든 일이 처음이라 어딜 가도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묻는 신참이었습니다.

 

힘든 건 분명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도시에서 어깨에 얹혀 있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더라는 점이었습니다. 빚 걱정, 사람 관계 스트레스, 잠 못 자던 만성 피로 —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흙을 만지면서 몸을 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른 아침 들녘으로 나가서 안개가 깔린 풍경을 보고, 한낮의 햇볕 아래 비지땀을 흘리고, 해 질 무렵 땀에 젖은 작업복을 갈아입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과. 도시에서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기억이었습니다. 몸이 고되니까 잠도 잘 왔어요. 도시에서 잠 못 들고 뒤척이던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영농조합 식구들과 흉금을 터놓는 사이가 되어

처음엔 다들 데면데면했지만, 같이 진흙뻘에 빠지고 같이 비 맞으며 일하다 보면 사이가 빨리 가까워집니다. 도시에서 사무실 동료들과 몇 년을 같이 있어도 풀리지 않던 거리감이, 시골에서 한달만 같이 일해보면 바로 사라집니다.

 

하루 일 끝나고 다 같이 모여 고기 굽고 식사하던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흙 묻은 작업복 그대로, 먼지 묻은 얼굴로 둘러앉아 그날 있었던 일 이야기하고, 농사 노하우 주고받고, 가끔은 사는 이야기까지 흉금을 터놓고 나누는 자리. 도시 회식 자리에서는 회사 이야기 빼면 할 말이 없을 때가 많았는데, 여기서는 그날 같이 본 들녘, 같이 들은 새소리, 같이 만난 동네 사람 이야기가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갔어요.

조합 식구들이 조금씩 가족처럼 느껴진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그때 알게 됐습니다. 비료 살포 첫날의 후회를 지탱해준 게 사실 이 사람들이었어요. 일 자체보다 사람이 견디게 해주더라고요.

시골에는 농사꾼만 사는 게 아니더라, 강화도에서 본 다양한 삶의 모습2
하루를 마치고 영농조합 식구들과의 회식 시간

시골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게 강화도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입니다. 시골이라고 해서 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더라고요. 일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직업과 삶의 모습이 정말 다양했습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농사짓던 땅을 승계받아 다시 시골로 돌아온 분도 있었고,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6차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공장도 세우고 체험장도 만들어 운영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벼농사를 짓되 자기 쌀을 브랜드화해서 온라인으로 직판하는 분도 있었고, 강화도 명물인 인진쑥을 가공해서 떡으로, 즙으로 만들어 자기 브랜드로 판매하는 분도 있었어요. 다른 동네에는 된장을 직접 담가서 관광객 상대로 큰 식당을 운영하는 분, 포도 농사를 크게 짓는 분, 스마트팜을 구축해서 운영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농사만이 아니었어요. 카페를 열어 운영하는 분, 편의점 사장님, 농협에서 일하는 은행원, 농기구와 농약을 파는 농협 직원, 하나로마트 직원, 농기구 수리점 사장님, 읍내의 병원·약국·식당·학원 — 정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시골 한복판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막연히 생각하던 "시골 = 늙은 농사꾼들"이라는 인식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농사도 벼농사, 하우스 농사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정말 다양한 작물과 방법들이 있었습니다. 

 

시골은 한 가지 직업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도시 못지않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작은 사회였습니다. 다만 그 사회의 평균 연령이 도시보다 좀 높을 뿐이었어요.

약점이 곧 기회로 보이던 순간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또 하나 분명히 보이는 게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동네에서 30대 이장님이 가장 젊은 축이고, 40대인 저도 그곳에서는 "젊은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이게 시골의 약점으로만 보였어요. 인구 소멸의 그림자, 활력 없는 동네, 다음 세대 없는 미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적다는 건 자리가 비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더라고요.

도시에서는 무엇을 하든 이미 누군가 하고 있고, 경쟁이 치열하고, 신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거기에 40대만 넘어가면 퇴물로 취급받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그런데 시골은 정반대였어요.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작은 시도라도 하면 그게 곧 그 동네의 "유일한 무엇"이 됩니다. 카페 하나만 잘 차려도 동네의 명소가 되고, 가공품 하나만 잘 만들어도 그 지역 특산품이 될 수 있는 거예요.

40대 한복판에서 도시에서는 "이미 늦었다" 소리를 자주 듣던 제가, 강화도에서는 어린 축에 속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처음엔 그 호칭이 어색하고 우스웠지만, 지나고 보니 그 안에 진짜 의미가 있었어요. 여기서는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다. 도시에서 잃어버렸던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마음먹었어요. 일단 물들어보자, 차근차근 적응해보자, 그리고 정착할 길을 진지하게 찾아보자. 그 결심으로 귀농 교육 프로그램에도 접수했고, 정착 지원금을 알아보면서 본격적으로 귀농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귀농 교육 종합반 강의시간

 

비료 살포기 그날의 충격에서 이렇게 마음먹기까지, 길게 보면 몇 달, 짧게 보면 몇 주의 시간이 흘렀어요. 시골이 처음에 보여준 얼굴과, 안에서 살면서 알게 된 얼굴은 정말 달랐습니다. 그 차이가 귀농의 진짜 시작이 어디인지를 가르쳐줬어요.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인 귀농 교육과 정착 시도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