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 후기

강화도 영농조합 창고 2층, 그해 여름 첫 한 달의 기록

고고파파 2026. 5. 2. 18:52

지난 글에서 2017년 7월 강화도로 짐을 옮기던 그날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이후 한 달에 대한 기록이에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도착해서, 영농조합 창고 2층 숙소에 자리를 잡고, 첫 농사 일을 시작하기까지의 시간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한 달이 제 귀농 생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어요. 환상이 빠르게 깨지면서, 이게 진짜 어떤 일인지 몸으로 알게 된 시기였거든요.

창고 2층 숙소, 일과 생활이 한 공간에

강화도 영농조합 창고 2층, 그해 여름 첫 한 달의 기록
보증금을 치룬 창고 2층 숙소

 

이사 전에 일주일 넘게 영농조합 식구들과 함께 창고 2층을 손봤습니다. 1톤 트럭 한 대에 짐을 줄이고 줄여 실어 강화도로 들어오던 그날의 기분은 지금도 또렷해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간다는 게 외롭고 허탈하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그런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좀 더 좋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어지만 가진 돈도 없고 일하는 곳에 가까우면 좋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창고를 선택한 것이 었습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는 없이 사는 조건이라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결정하고 드디어 도착해서 살게된 숙소는 영농조합 창고 2층의 일부였어요. 1층 한쪽에 사무실이 있고, 그 위가 제 숙소였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어요. 출퇴근 시간이 1분도 안 걸렸습니다. 좋게 말하면 직주 일치, 솔직히 말하면 일과 생활이 한 공간 안에 있는 형태였어요.

장점은 분명했습니다. 출퇴근 자체가 사라지고, 일하다 힘들면 잠깐 올라와서 쉴 수 있었어요. 단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과 사생활이 분리가 안 됐어요. 주말에도 영농조합으로 누가 찾아오면 결국 제가 응대해야 했습니다. 일반 주택이 아니다 보니 화장실은 1층까지 내려가야 했고, 세탁도 1층 사무실 옆 화장실에 있는 세탁기까지 가야 했어요. 사소해 보이지만 매일 반복되니까 점점 거슬렸습니다.

진짜 힘든 건 겨울이었어요. 2층으로 연결된 급수관이 얼어붙고, 싱크대 하수관이 어는 일이 매년 반복됐습니다. 그 어려움은 첫해뿐 아니라 그곳에서 살았던 시간 내내 계속됐어요. 시골에서 산다는 건 이런 디테일이 쌓이는 일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됐습니다.

영농조합 식구들, 그리고 이장 어머님의 반찬

첫 출근을 한 날, 솔직히 무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도시에서 했던 일과는 차원이 달랐고, 일을 가르쳐줄 사람들도 다들 현장에 나가 있어서 사무실은 거의 비어 있었어요. 아침에 잠깐, 일 끝날 때 잠깐 얼굴 보는 정도였습니다.

영농조합에는 조합원 세 분과 같이 일하는 직원 한 명이 있었어요. 조합 업무를 총괄하시는 분은 동네 이장이셨고, 30대로 동네에서 가장 젊은 축에 드는 분이었습니다. 다른 조합원분들은 제 또래였고, 직원은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였어요. 모두 따뜻하게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식사는 의외로 잘 챙겨졌어요. 점심은 이장님 댁에서 조합 식구들과 함께 먹기도 하고, 가끔 같이 외식도 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은 이장 어머님이 반찬을 챙겨주셔서 제가 마무리하는 식으로 해결했어요. 혼자 살던 미혼이라 식사 챙기는 게 가장 막막한 부분일 줄 알았는데, 이 부분은 의외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골 인심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이런 따뜻함이 동시에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사람마다, 마을마다 다르다는 거겠죠.

첫 일이었던 비료 살포, 논에 빠진 그날

강화도 영농조합 창고 2층, 그해 여름 첫 한 달의 기록-비료살포
비료를 주던 귀농 첫날

 

농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됐어요. 처음 한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논에 비료를 뿌리는 일이었어요.

태어나서 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가까이서 본 적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비료 살포기를 지고 논 안으로 들어가서 왔다 갔다 하며 비료를 뿌리는 일을 맡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논에 들어가면 발목 정도까지 빠지는 줄 알았어요. 텔레비전이나 사진에서 보던 논의 이미지가 그랬으니까요. 막상 들어가 보니 깊은 곳은 허벅지까지 빠지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등에 진 비료 살포기는 가득 채우면 25킬로그램이 넘었어요. 그 무게를 지고 진흙뻘을 한 발씩 빼면서 움직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날 한나절 일하고 숙소로 올라오면서 솔직한 후회가 밀려왔어요. "내가 도대체 뭐 하러 여기 왔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 빚을 안고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떠나왔는데, 막상 진흙뻘에 무릎까지 빠져서 비료를 뿌리고 있으니 도시 시절의 책상 의자가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래도 하루 만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짐도 다 옮겼고, 보증금도 냈고, 무엇보다 도시에 다시 돌아가 봐야 풀릴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날은 그냥 악으로 버텼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첫날의 기억이 생생해요.

후회와 버팀, 그 사이 어디쯤

귀농 첫 한 달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환영받았던 따뜻한 분위기와, 비료 살포기를 지고 진흙뻘에 빠지던 충격이 동시에 있던 시기예요. 도시에서 그렸던 장밋빛 미래는 일주일도 못 가서 깨졌고, 그 자리에 "이게 진짜 시골 농사구나" 하는 묵직한 감각이 들어찼습니다.

후회와 버팀, 그 사이 어디쯤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어요. 일하면서 농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고, 영농조합 식구들과도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창고 2층의 불편함도 점점 일상이 되어갔어요. 사람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한다는 말이 그때 처음 실감 났습니다.

그렇게 제 농촌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다음 글에서는 첫 한 달을 지나 처음 한 시즌을 다 보내는 동안 마주친 진짜 농사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비료 살포기 그날의 충격은 시작에 불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