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후 첫번째 봄, 농사라는 게 단순히 "땅에 모를 심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빠르게 알게 됐습니다. 모내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 한겨울부터 봄 초입까지 이어지는 준비 과정이 따로 있었어요. 볍씨를 고르고, 신청하고, 받아 와서, 소독하고, 헹구고, 모판에 뿌려, 발아실을 거쳐 못자리에서 키우는 일들. 이 글은 강화도 영농조합에서 그 봄 작업 전체를 옆에서 본 기록입니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면, 이 과정이 농사라기보다 공장 같았어요.
20만평을 모내기하는 곳
제가 일했던 영농조합은 작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조합에서 직접 짓는 벼농사가 10만평이 넘었고, 모내기 대행까지 합치면 20만평이 넘는 논에 모를 심는 곳이었어요. 이 규모를 처음 들었을 때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 평수라고 하면 아파트 25평, 30평 같은 단위에 익숙한데, 10만평은 단위가 차원이 다른 숫자였거든요.
이 정도 규모를 운영하니까 볍씨 몇 가마니 단위로는 부족했어요. 종자 신청도, 소독도, 모판 만들기도 모두 산업 규모로 진행됐습니다. 한 해 농사의 첫 단추가 볍씨 선택과 신청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볍씨 종류와 신청, 농민들의 또 다른 경쟁

쌀이 다 같은 쌀인 줄 알았던 사람이 처음 영농조합에 가서 가장 놀라는 부분이 여기예요. 볍씨 종류가 정말 다양합니다. 일반 벼부터 찹쌀 벼까지 있고, 그 안에서도 품종이 또 갈라집니다.
해마다 인기 있는 품종이 달라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농가들이 그해 어떤 품종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종자 수요가 들쭉날쭉해지고, 그게 가격과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거기에 지역 기후에 맞는 품종도 따로 있어요. 그냥 좋다고 아무거나 심는 게 아니더라고요.
강화에서는 개량종인 삼광이 인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수량이 많고 식감도 좋아서 농가들이 단연 선호했어요. 그 외에 추청이나 고시히카리도 많이 심었고, 찹쌀도 일부 심었습니다. 같은 강화도 안에서도 농가에 따라 선호하는 품종이 갈렸어요.
볍씨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하거나 온라인으로 국립종자원에 신청했어요. 겨울에 우선 신청을 받고, 그다음 해 초에 추가 신청이 가능했습니다. 다만 추가 신청은 종자가 남아 있는 경우에만 가능했어요.
여기서 또 의외였던 게 인기 있는 품종은 신청 기간 중에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에요. 농가 입장에서는 좋은 품종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경쟁이었습니다. 강화도에서 못 구하면 다른 지역에서 구해 오기도 했고, 그 안에서도 선점 싸움이 치열했어요. 도시에서는 마트에 가면 항상 쌀이 있으니까 "쌀 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와닿지 않잖아요. 그런데 농가에서는 매년 봄 전에 종자 확보부터 진심이었습니다.
소독과 헹굼, 한 알 한 알의 세심한 작업
볍씨를 받아 오면 바로 모판에 뿌리는 게 아니에요. 소독이라는 중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소금물에 담가서 쭉정이를 가려냅니다. 알이 차지 않은 볍씨는 발아가 안 되거나 약한 모로 자라기 때문에 골라내야 해요. 양이 많아서 이 작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음은 온탕 소독. 영농조합에는 온탕 소독기가 있었는데, 볍씨를 그물망에 담아 온탕 물에 일정 시간 담그면 시간이 되면 기계가 자동으로 꺼내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종자 표면에 묻은 균이나 해충 알을 제거하는 단계예요.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하기엔 양이 너무 많으니 기계가 필수였습니다.

온탕 소독이 끝나면 약제 소독으로 넘어갑니다. 소독약을 풀어놓은 큰 통에 볍씨를 넣고 약 이틀 정도 담가뒀어요. 이 과정이 끝나면 깨끗한 물로 헹궈서 약제 잔여물을 제거하고, 탈수해서 물기를 빼야 합니다. 약물이 묻은 채로 모판에 들어가면 발아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이 단계도 빠뜨릴 수 없는 작업이에요.
이 정도까지는 "정성을 들이는구나" 정도의 준비체조 느낌인데, 다음 단계에 들어가는 본게임은 작업 수준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컨베이어 라인 위에서 돌아가는 봄

모판 파종은 한마디로 공장 생산라인이었습니다.
영농조합에서 일주일 안에 모판 2만장 이상을 파종해야 했거든요. 직접 짓는 10만평에 더해 모내기 대행하는 농가들 몫까지 합치면 20만평이 넘는 논에 모를 심어야 했고, 그러려면 모판이 그 정도 필요했습니다. 사람 손으로 한 장씩 만드는 게 아니라 기계 라인이 돌아가야 가능한 양이었어요.
라인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깨끗하게 세척한 빈 모판을 컨베이어 라인에 올려 놓습니다. 그러면 모판들이 컨베이어라인을 따라 이동합니다. 모판 위에 상토(모판용 흙)가 자동으로 뿌려집니다. 상토는 톤백 단위로 계속 상토공급기에 채워 넣어야 했어요. 그다음 파종기가 일정한 양의 볍씨를 모판 위에 흩뿌립니다. 그 위에 다시 상토가 한 겹 덮입니다. 그리고 물을 골고루 모판에 뿌려줍니다. 라인 끝에서 완성된 모판이 나오면 사람이 받아서 차곡차곡 쌓고요.
이 라인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야 하루에 수천 장이 나옵니다.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라인이 스톱돼요. 상토공급기에 흙이 떨어져도 멈추고, 흙이 덩어리 져서 배출구가 막히기도 하고요, 파종기에 볍씨가 일정하게 안 뿌려져도 멈추고, 컨베이어가 어긋나도 멈춥니다. 라인이 한 번 멈추면 전체 일정이 밀리니까 모두 긴장한 상태로 돌아갔어요.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농사가 이렇게 산업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도시에서 막연히 그렸던 "삽 들고 흙 만지는 농사"의 그림은 영농조합의 봄 풍경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발아실에서 못자리까지
파종이 끝난 모판은 차곡차곡 쌓아서 랩핑을 합니다. 그래야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거든요. 이 상태로 지게차를 이용해서 발아실로 옮겼어요. 발아실 안에서 며칠 동안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볍씨에서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싹이 어느 정도 튼 모판은 다시 못자리로 옮겨졌어요. 못자리는 미리 만들어놓아야 하는 또 다른 작업이었습니다. 평평한 자리를 잡아 모판이 고르게 놓일 수 있도록 정리하고, 물 관리가 가능하도록 준비해두어야 해요.
옮긴 모판 위에는 부직포를 덮어줬습니다. 어린 모를 보호하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해주는 역할이에요. 한참을 그 상태로 두고,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부직포를 벗겨냅니다. 그러면 비로소 모내기 준비가 끝난 거예요.

모 한 포기의 무게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본 후에는 마트에서 쌀 한 포대를 고르는 마음이 좀 달라지더라고요. 한 포기의 모가 논에 자리 잡기까지 거치는 단계가 정말 많았어요. 볍씨 신청부터 소독, 헹굼, 탈수, 모판 파종, 발아실, 못자리, 부직포 관리까지. 시간으로 따지면 겨울부터 봄까지 몇 달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일주일 안에 모판 2만장이라는 시간 압박 속에서 진행됐어요. 일정 하나만 어긋나도 한 해 농사가 흔들리는 구조였거든요. 농사가 정밀한 일이라는 걸 머리로 알았던 것과, 실제 일어나는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키워낸 모를 드디어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의 날을 풀어보려 합니다. 한 시즌의 가장 큰 작업이자, 농촌의 봄을 가장 분주하고 힘들었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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