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조합 11

한 해 농사가 결정되는 며칠 — 영농조합 모내기의 전 과정

지난번 글에서 모판이 못자리에서 자라 푸른 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봤어요. 부직포까지 걷고 나면 어린 모가 햇볕을 받으며 한참을 자라는데, 그 모가 10~15cm쯤 되면 드디어 본격 모내기 단계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그 모내기의 전 과정을 풀어보려 해요. 현대화된 영농조합에서는 이걸 어떻게 운영하는지, 그 며칠 동안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요. 트랙터가 도는 논, 옛 쟁기 시대의 끝모내기를 하려면 가장 먼저 논을 갈아야 합니다. 예전엔 소가 쟁기를 끌면서 갈았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옛날 얘기예요. 지금은 트랙터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트랙터가 한 번 들어가서 넓은 논을 쓱쓱 돌면서 써래질을 하고 나면 흙이 다 갈려요. 도시 사람이 처음 보면 그 속도에 놀랍니다. 사람 몇십 명이 며칠 걸려야 했을 일을..

일년의 농사를 결정한다. 모판이 못자리에 깔리기까지 — 영농조합 봄 작업 풍경

지난번에 "한 알의 볍씨가 모 한 포기가 되기까지"라는 글에서 영농조합 봄 작업의 전체 흐름을 한 번 정리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큰 그림으로 흘러갔는데, 이번에는 사진을 보면서 각 단계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려 합니다. 모들이 발아실에서 싹을 틔우고 못자리에 깔려 푸른 모로 자라기까지 — 실제로 옆에서 작업해보지 않으면 도시 사람들은 알수 없는 부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사실 저도 도시사람이라 이런 건 알지 못했답니다.종자별로 정리된 볍씨 포대들영농조합 창고 한쪽에는 겨울부터 볍씨 포대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종자별로 따로따로 정리된 포대들이 줄지어 놓이는데, 사진에 보이는 건 강화도에서 가장 많이 심는 삼광벼 포대들입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추청도 있고 고시히카리, 찹쌀도 있고 취급한 쌀 종자가 꽤 ..

강화도에서 가끔씩 들른 카페들 — 109 하우스, 조양방직, 그리고 이름 모를 카페들

오늘은 강화도에서 가봤던 카페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해요. 사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가보지는 못했어요. 영농조합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늘 일이 바빴고, 여가를 즐길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어쩌다 한 번씩 영농조합 식구들과 같이 짬을 내서 다녀온 곳들이 있었습니다.지금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따져보니, 강화도에서 3여년을 보내는 동안 카페에 간 게 한 10번 정도였어요. 그중에서도 사진이 남아 있는 곳을 중심으로 몇 군데를 떠올려보려 합니다. 사진이 기억이 되살아나서 카페에 갔던 추억을 떠올리니 강화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바닷가에 그리스풍으로 서 있던 카페 109 하우스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진은 바닷가에 있는 카페 109 하우스예요. 강화도 바닷가를 지나가다 보면 그..

농촌에서 꼭 필요한 농기계들 — 트랙터, 이앙기, 동력분무기

앞선 글에서 귀농 전에 따져봐야 할 두 가지 — 작물과 거주지 — 를 풀어봤습니다. 이어서 농촌에서 만나게 될 여러가지 현실 중에 오늘은 그중 하나인 농기계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시골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이 사실 농기계 문제거든요. 사람이 직접할 수 있는건 솔직히 텃밭 농사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지금 농촌에서는 기계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인력으로 다 했다지만, 농촌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러다 보니 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계의 힘을 최대한 빌려야 하는 구조가 됐습니다. 강화도 영농조합에서 3여년을 보내면서, 도시에서 막연히 그렸던 "삽 하나 들고 농사를 짓는다"의 그림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어요.트랙터 — 농촌의 만능 장비옛..

귀농 전에 따져봐야 할 필수 사항 — 무엇을 키우고 어디서 살 것인가

귀농 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 달라요. 가치관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이게 제일 중요해"라고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 귀농입니다.그래도 강화도에서 3여년을 보내고 돌아보니,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꼭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가, 그리고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두 가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귀농하면 농촌 생활을 이어 나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의식주의 문제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의식주이고, 농촌이라고 그 진리가 달라지지 않더라고요.의식주가 먼저, 그 다음이 농사도시에서 직장 다니실 때를 떠올려보세요. 출퇴근하고, 야근하고, ..

평온해 보이는 농촌의 숨은 위험들 — 트랙터·농로 사고·건조기 화재

도시 사람들이 시골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리는 단어는 "평온"이에요.저도 도시를 떠나 강화도로 갈 때 그 단어 하나에 마음이 끌렸습니다.그런데 막상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보니, 농촌은 평온해 보이지만 아주 많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글은 강화도에서 일하는 동안 직접 보거나 겪은 세 번의 사고 이야기입니다.영농조합 트랙터가 새 밭에 빠진 일, 농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그리고 추수 후 건조기에서 일어난 화재.셋 다 평온함의 이면에 있는 농촌의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밭에 빠진 트랙터 영농조합에서 일하던 어느 날, 새로 복토한 밭에 트랙터를 넣어 밭을 갈아야 하는 일이 있었어요.복토가 막 끝난 자리라 바닥이 평평해 보였습니다.보기엔 멀쩡했는데 트럭으로 흙을 부을 때 충분히 다져지지 않은..

농촌의 현실 2026.05.08

정착 지원금 합격하고도 받지 않은 이유 — 5년 거치 상환과 영농조합 출자라는 현실

도시 사람들이 귀농을 알아볼 때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5억까지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는 이야기예요. 저도 그 말에 솔깃해서 귀농 결심에 큰 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5억이라는 숫자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신청서를 직접 쓰고, 면접을 보고, 1차 탈락을 거쳐 추가 합격 통보까지 받은 후에야 — 그 자금을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이 글은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신청서를 혼자, 퇴근 후 매일 한 칸씩귀농 교육을 다 이수한 다음 해 초에 정착 지원금 신청 절차가 열렸어요. 저는 영농조합에서 일하던 입장이라 낮에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청서는 일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와서 매일 한 칸씩, 한 항목씩 채워나갔어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였습니다.신청서가 단순한 양식이 아..

농촌의 현실 2026.05.07

한 알의 볍씨가 모 한 포기가 되기까지, 강화도의 볍씨 파종, 못자리 작업

귀농 후 첫번째 봄, 농사라는 게 단순히 "땅에 모를 심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빠르게 알게 됐습니다. 모내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 한겨울부터 봄 초입까지 이어지는 준비 과정이 따로 있었어요. 볍씨를 고르고, 신청하고, 받아 와서, 소독하고, 헹구고, 모판에 뿌려, 발아실을 거쳐 못자리에서 키우는 일들. 이 글은 강화도 영농조합에서 그 봄 작업 전체를 옆에서 본 기록입니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면, 이 과정이 농사라기보다 공장 같았어요.20만평을 모내기하는 곳제가 일했던 영농조합은 작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조합에서 직접 짓는 벼농사가 10만평이 넘었고, 모내기 대행까지 합치면 20만평이 넘는 논에 모를 심는 곳이었어요. 이 규모를 처음 들었을 때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 평수라고 하면 아파트..

시골에는 농사꾼만 사는 게 아니더라, 강화도에서 본 다양한 삶의 모습

비료 살포기 메고 진흙뻘에 빠져서 "내가 뭐 하러 여기 왔지" 하던 그날 이야기로 지난 글을 마무리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다음 날 짐 싸서 다시 서울로 올라갈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서 첫날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발견에 대한 이야기예요.일은 끝이 없었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영농조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직접 경작하는 논과 밭만 챙기는 게 아니었어요. 경작 대행 일도 만만치 않게 많았습니다. 모내기, 볍씨에서 모종 키우기, 논 갈기, 밭 갈기, 비닐 씌우기, 파종, 비료, 농약, 수확, 건조까지. 일 종류를 적어보면 정말 끝이 없더라고요. 저는 그 모든 일이 처음이라 어딜 가도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묻는 신..

강화도 영농조합 창고 2층, 그해 여름 첫 한 달의 기록

지난 글에서 2017년 7월 강화도로 짐을 옮기던 그날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이후 한 달에 대한 기록이에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도착해서, 영농조합 창고 2층 숙소에 자리를 잡고, 첫 농사 일을 시작하기까지의 시간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한 달이 제 귀농 생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어요. 환상이 빠르게 깨지면서, 이게 진짜 어떤 일인지 몸으로 알게 된 시기였거든요.창고 2층 숙소, 일과 생활이 한 공간에 이사 전에 일주일 넘게 영농조합 식구들과 함께 창고 2층을 손봤습니다. 1톤 트럭 한 대에 짐을 줄이고 줄여 실어 강화도로 들어오던 그날의 기분은 지금도 또렷해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간다는 게 외롭고 허탈하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그런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