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 가이드

귀농 전에 따져봐야 할 필수 사항 — 무엇을 키우고 어디서 살 것인가

고고파파 2026. 5. 12. 23:17

귀농 전에 따져봐야 할 필수 사항 — 무엇을 키우고 어디서 살 것인가 1
고추 하우스 재배

 

 

귀농 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 달라요. 가치관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이게 제일 중요해"라고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 귀농입니다.

그래도 강화도에서 3여년을 보내고 돌아보니,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꼭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가, 그리고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두 가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귀농하면 농촌 생활을 이어 나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의식주의 문제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의식주이고, 농촌이라고 그 진리가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의식주가 먼저, 그 다음이 농사

도시에서 직장 다니실 때를 떠올려보세요. 출퇴근하고, 야근하고, 회식하고, 그 일상의 바탕에는 늘 안정된 주거지와 끼니가 있었습니다. 그게 흔들리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귀농도 똑같습니다. 아니, 사실 더 심해요. 농촌은 도시처럼 24시간 편의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밤늦게 배달 시킬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가까운 마트가 차로 30분 거리인 경우도 있어요. 의식주의 기본이 안 갖춰진 채로 농촌에 들어가면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못 버티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작물을 키워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그리고 그 돈으로 어디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이 두 줄기가 귀농 결심 전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가 — 선택지는 많지만 현실이 좁힌다

저도 귀농 결심 초기에 이 질문 앞에서 오래 고민했습니다. 특용작물을 할까, 과수를 할까, 채소를 할까, 아니면 고구마·감자 같은 구황작물을 해야 할까. 거기에 쌀농사도 있고요. 방향을 바꾸어서 산속에 들어가 산나물을 키울까, 가두리 양식으로 물고기를 키울까까지 고민했었어요. 선택지는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씩 따져보니,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옵션이 빠르게 좁혀지더라고요.

먼저 산나물 같은 임산물은 한 번 심으면 2~3년 이상 기다려야 수확이 시작됩니다. 그 사이에 수입이 거의 없거든요. 그 2~3년을 버텨낼 자금과 시간이 충분해야 가능한 선택이에요. 과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를 심어놓고 최소 2~3년은 길러야 첫 수확이 가능합니다. 자금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너무 긴 공백이에요.

귀농 전에 따져봐야 할 필수 사항 — 무엇을 키우고 어디서 살 것인가 2
콩 재배

 

그래서 바로 키워서 바로 수확이 가능한 작목으로 좁혀지는데, 그게 일반 채소와 쌀농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일반 채소도 시설재배냐 노지재배냐에 따라 진입 장벽이 또 갈려요. 시설재배는 평당 시설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요즘 화두인 스마트팜 같은 경우는 평당 100만 원 이상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서, 초기 자본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요. 저처럼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벽들을 하나씩 마주하다 보니, 결국 제 선택은 영농조합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며 천천히 최종 작목을 정하는 쪽으로 결정되었어요.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농촌에서 실제로 무슨 작목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 옆에서 본 다음에 결정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 사례일 뿐이에요. 귀농 자금이 충분히 있거나, 시간 여유가 있는 분이라면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과수원을 시작해놓고 2~3년 기다릴 수도 있고, 시설재배에 큰 돈을 투자할 수도 있고, 산나물 같은 장기 작목에 도전할 수도 있어요.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가 아닙니다. 본인의 자금과 시간,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결정해야 할 영역이에요.

어디서 살 것인가 — 이것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작물을 정했으면 다음 단계는 집입니다. 농촌 거주지는 도시와 옵션이 좀 달라요. 크게 세 가지로 갈립니다.

첫째, 시골집을 매입하거나 임대해서 사는 방법. 빈집이 많은 동네에서는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지만, 수리비가 의외로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둘째, 농막 같은 간이 시설을 사거나 지어서 거기서 생활하는 방법. 초기 비용은 적게 들지만 생활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셋째, 저처럼 영농조합이나 농가에 소속돼서 그 안에서 제공받는 숙소에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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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안에 집을 짓는 광경 - 건축허가 안나옵니다.

 

저는 비용을 가장 줄이는 쪽을 택했습니다. 영농조합에서 일하면서 그 안의 숙소를 거주지로 삼았어요. 월세 부담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지만, 단점도 분명했습니다. 직장과 집이 한 공간이라 일과 생활의 경계가 거의 없었고, 사생활도 제한적이었어요. 비용 절감과 라이프스타일의 질 사이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는 사람마다 답이 다를 겁니다.

여유가 좀 있으신 분이라면 마음에 드는 시골집을 구해서 본인 취향대로 꾸미고 사는 것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에요. 한 번 정착한 거주지가 농촌 생활의 만족도를 크게 좌우하니까, 자금 사정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신중하게 결정하시는 게 맞습니다.

강화도의 전원주택

 

지자체에서 거주지 마련에 도움을 주는 지원 사업도 있으니 이 부분도 미리 찾아보시면 좋아요. 다만 한 가지 짚고 가실 게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부 지원이 무상으로 나가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대부분 상환 구조로 바뀌었어요. 결국 빌리는 돈입니다. 받을 때는 좋지만 5년·10년 후에 그 돈을 갚아 나갈 수 있는 자금 흐름이 본인에게 있는지 미리 계산해보고 신청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 부분은 앞서 쓴 "정착 지원금 합격하고도 받지 않은 이유"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뤘으니, 관심 있으시면 그 글도 함께 보세요.)

작물과 거주지, 두 가지가 정해져야 비로소 출발선

이렇게 길게 풀었지만 결국 핵심은 단순합니다. 무엇을 키울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두 줄기가 어느 정도 정해져야 비로소 귀농의 출발선에 설 수 있어요. 다른 것들 — 농기계 면허, 마을 인간관계, 농업 기술 같은 부분 — 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안 정해진 상태에서 그것들부터 챙기는 건 순서가 맞지 않아요. 의식주가 먼저예요.

귀농을 고민하시는 분께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어요. 막연히 "농촌에서 농사 짓고 싶다"는 그림에서 멈추지 마세요. 그 그림을 구체적인 작목 이름으로 좁히고, 그 작목으로 1년·3년·5년 후의 수익이 어떻게 굴러갈지 자기 손으로 한번 계산해보세요. 그리고 그 수익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같은 무게로 따져보세요. 이 두 줄기가 머릿속에서 또렷해지면, 다른 부수적인 결정들은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풀려나갑니다.

다음 글에서는 귀농 준비 단계에서 이어서 살펴봐야 할 다른 항목들을 풀어보려 합니다. 오늘 이야기한 작물과 거주지가 큰 두 기둥이라면,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그 위에 올라가는 작은 기둥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