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 가이드

귀농 전 꼭 따져봐야 할 현실 — 강화도 3년 만에 도시로 돌아온 이유

고고파파 2026. 6. 13. 17:36

3년 가까이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됐다. 강화로 들어갈 때만 해도 여기서 정착해 귀농을 성공적으로 해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떠나오기까지의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잠시 일손을 놓고 논을 바라보던 어느 날. 이런 시간이 좋으면서도,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힘든 건 여러 가지였다. 체력적으로 고된 건 기본이고, 새로 익혀야 할 기술도 많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컸던 건 따로 있었다. 도대체 어떤 작목으로 내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그 선택이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무 기반도 없이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 처음부터 자리를 잡는다는 게,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강화 들판 전경. 멀리서 보면 평화롭지만, 그 안에서 먹고사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보다 먼저 귀농하거나 귀촌한 사람들을 보면, 기반이 탄탄한 사람도 있었고 맨몸으로 시작한 사람도 많았다. 지켜보며 든 생각은 이랬다. 우선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는 게 제일 좋고, 그 바탕 위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아 본인이 계획한 작물이나 사업을 펼치는 게 가장 안정적이라는 것. 하지만 나는 기반도 없었고 경제적인 여유도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택한 길이 영농조합을 통해 현지에 적응한 다음 자립하는 것이었다.

귀농 자금을 받고도 부딪힌 벽

처음엔 잘 적응하려고 애썼다. 교육도 받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귀농 자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까지 됐다. 앞서 정착지원금 이야기에서 자세히 풀었듯이 처음엔 귀농자금(정착지원금) 대상자에서 탈락했지만 추가 선정때 대상자가 되었다. 내 기억에는 거의 7~8대 1일 경쟁률을 뚫었다. 

귀농·귀촌 교육 수료식. 여기까지 올 때만 해도 길이 열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자금을 받아도 현실적으로 키울 수 있는 작물이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최대 5억까지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지만 5년 후 상환계획을 세워보니 앞이 깜깜했다. 그냥 받고 보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계산을 해보니 가늠이 되었다. 그래서 상환 가능한 정도로 줄이다 보니 신청금액이 2억이 채 안되었다. 그러다 보니 재배할 작물을 선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대가 한가지 치명적인 이유가 더 있었다. 내가 영농조합에 몸이 묶여 있다 보니 조합을 나와 개별적으로 농사를 짓기가 어려웠고, 조합에 출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그 출자금을 회수하기가 막막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이 부분이 결국 도시로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어지만 농촌도 지역마다 귀농을 진행할 때 사정이 다 다르다. 만약 내가 강화가 아니라 강원도나 경상도 같은 곳으로 갔다면 정착했을 수도 있다. 토지를 구입하는 비용 자체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강화는 땅값이 비싸서 귀농 자금을 받아봤자 살 수 있는 땅이 얼마 안 된다. 같은 돈이면 다른 지역에서는 두세 배 넓은 땅을 사서 원하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여기에 한계가 하나 더 있었다. 특용작물이나 하우스 같은 시설 재배는 귀농 자금으로 감당이 안 된다. 평당 시설비가 꽤 비싸서 몇 평 꾸리기도 빠듯하다.

하우스 시설 재배는 가지고 있는 돈에 따라 꾸릴 수 있는 면적이 결정되게 된다.

나같은 경우는 농지를 임대한다고 해도 자금에 맞추어 시설재배를 한다면 작은 평수를 꾸리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데, 5년 거치 뒤에는 그 귀농 자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게다가 농사 수입이라는 게 날씨에, 경매가에, 수매가에 휘둘리다 보니 계획대로 된다는 보장이 있질 않았다. 겉에서 볼 땐 괜찮아 보여도, 직접 몸을 담가 보니 수익률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마이너스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가 이 농업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하는 물음표가 그렇게 생겼다. 많은 분들이 생산에 그치지 않고 가공하고 판매하고 서비스까지 손을 뻗어 '6차 산업'이라는 말을 만들어가며 수익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땅속 물을 찾던 지하수 작업. 농사를 지으려면 이런 기반 하나하나가 다 돈이고 일이었다.

돌아오던 날의 착잡함

강화에 처음 들어가던 날의 설렘을 아직 기억한다. 그런데 그 모든 일과를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던 날의 기분은, 뭐라 말로 다 하기 어려울 만큼 착잡했다.

떠나오던 길.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날 내 마음이 꼭 그랬다.

 

도시로 돌아와 또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다. 귀농했던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후회와 낭비로 남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농사일에 몸도 많이 상한 데다, 황금 같은 3년 가까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다시 도시로 향하던 길. 익숙한 신호등 앞에 서니 그제야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그래도, 그 시간이 남긴 것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3년은 내 인생에서 참 많은 경험과 생각과 고민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도시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걸 달력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느꼈다. 새벽안개가 걷히는 들판의 서늘한 공기, 모판을 나르며 등을 적시던 땀, 한여름 뙤약볕 아래 허리를 펴며 올려다보던 하늘, 그리고 가을 햇살에 누렇게 익어가던 벼를 바라보던 그 뿌듯함. 도시에서 숫자로만 흘러가던 하루가, 여기서는 흙과 날씨와 작물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흘렀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도, 한 해 한 해 몸으로 부딪히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를 느꼈다. 그건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는 환산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남은 것들이었다.

녹색으로 자란 모판. 이 작은 모가 가을이면 황금 들판이 됐다.

봄이면 못자리를 만들고, 모판을 깔고, 모내기를 했다.

밭농사와 벼농사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면 콤바인이 들판을 가르고, 추수중인 콤바인 앞에 벼 사이에서 너구리가 뛰쳐나갈 때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던 추수의 기쁨. 이 한 다발의 무게가 묵직했다.

 

한여름에 땀과 눈물을 흘리며 작업을 이어가고 가을을 맞아 수확의 기쁨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수가 없다.

자연은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기울인 노력만큼 돌려 받는다. 분명 힘들고 어렵지만 수확할 때의 뿌듯함은 그 동안의 고생을 덮고도 남는다.

함께 땀 흘린 동료들. 이 사람들이 있어 버틴 시간이었다.

 

일하던 곁을 지켜준 동물들. 키보드 위에서 자던 이 녀석도 그중 하나다

 강화에 자리를 잡고 귀농 교육을 받고, 수료를 하고, 모내기를 하고, 벼를 길러 가을에 거두고, 밭농사도 짓고, 하우스도 해보고, 퇴비도 나르고, 지하수도 파고, 농가 주택도 지어봤다.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그 추억과 경험이, 지금 와 생각하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놓인 볏짚 곤포. 한 해가 그렇게 저물었다.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께

그래서 나처럼 귀농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려는 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계획을 세우고, 가능하면 직접 경험해 보고, 급하지 않게 결정하시길 바란다. 현실은 냉정하다. 겉으로 보는 것과 내가 직접 그 업에 몸을 담그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 모르는 부분은 많이 체험해 보고 물어봐야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사실 이건 나 말고도 먼저 겪은 선배들이 늘 하는 말이고, 나도 같은 생각이다. 바뀌지 않는 진리 같은 거다. 솔직히 나도 성급했던 면이 없지 않다. 알아보고 고민한 기간이 꽤 길었는데도, 돌이켜보면 그게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강화 바닷가 풍경. 이런 곳에서 살아봤다는 것만으로도, 후회만 남은 시간은 아니었다.

도시로 돌아와도 계속되는 이야기

이렇게 강화에서의 생활을 쭉 풀어내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이야기까지 적고 나니 1부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다. 그동안 많은 내용을 적었지만, 중간중간 미처 다 적지 못한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사실 많다. 그런 이야기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정리해서 올려볼 생각이다.

작업을 위해 작업자들이 모판을 옯기고 있다. 멀리서 보면 참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다.

그러니 이 블로그가 끝난 건 절대 아니다. 강화에서 있었던 못다 한 이야기들, 그리고 도시로 돌아온 뒤 어떻게 지내왔는지까지, 앞으로도 계속 이어서 풀어가려 한다. 지금까지 이 긴 이야기를 함께 봐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도시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는 아직 더 남아 있으니, 그 부분은 다음 기회에 다시 이어가겠다.

눈오는 겨울날. 겨울도 바쁜 농촌 생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