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후기 12

귀농 전 꼭 따져봐야 할 현실 — 강화도 3년 만에 도시로 돌아온 이유

3년 가까이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됐다. 강화로 들어갈 때만 해도 여기서 정착해 귀농을 성공적으로 해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떠나오기까지의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힘든 건 여러 가지였다. 체력적으로 고된 건 기본이고, 새로 익혀야 할 기술도 많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컸던 건 따로 있었다. 도대체 어떤 작목으로 내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그 선택이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무 기반도 없이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 처음부터 자리를 잡는다는 게,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나보다 먼저 귀농하거나 귀촌한 사람들을 보면, 기반이 탄탄한 사람도 있었..

귀농 후기 2026.06.13

밭농사 한 해를 한눈에 — 보리, 감자, 고구마, 순무, 고추까지

콩 농사는 지난 글에서 따로 풀었으니, 오늘은 강화도에서 길러본 다른 밭작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려고 한다. 보리, 감자, 고구마, 순무, 고추. 작물마다 심는 법도 캐는 법도 제각각이라, 같은 밭농사라도 손이 가는 자리와 시기가 다 달랐다. 사진을 곁들여 한 해 밭농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여드리겠다.황금물결, 보리밭먼저 보리다. 사진 속 누렇게 익은 보리밭에 내가 서 있는 게 베기 직전 모습인데, 그야말로 황금물결이다.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넉넉해진다.보리는 겨울에 심고 겨울을 나는 작물이다. 보리밭은 밟아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보리가 심어진 땅이 겨울에 들떠있으면 뿌리가 얼기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보리밭은 물을 대는 논농사가 아니라 마른 땅에서 짓는 밭농사다. 그래서 보리밭이라고 부르는 거 아..

운동회를 기억하게 한 면민의 날, 노래가 울려 퍼진 새우젓축제 — 강화도에서 보낸 축제날들

농사일에 파묻혀 살다 보면 계절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그런데 강화도에서 지내는 동안 의외로 마주친 게 있었다. 바로 축제와 행사다. 많이 다닌 건 아니다. 일하는 처지라 멀리까지 찾아다니며 즐길 형편은 못 됐지만, 가까운 데서 열리는 행사는 짬을 내서 참가했다. 오늘은 그중 기억에 남는 강화도 축제 두 가지를 풀어보려고 한다.학창 시절 운동회가 떠오른 면민의 날먼저 봄에 있었던 면민의 날이다. 5월 초, 어린이날 바로 전날인 5월 4일에 열렸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지내던 면에서 열린 행사였는데, 강화도는 면마다 이런 면민의 날을 연다. 면 11개 마을의 이장님들과 주민들이 다 모여서 축제처럼 하루를 보내는 자리다. 장소는 면에 있는 학교 운동장이었다.그해 행사의 주제는 하나된 우리면, 행..

귀농 후기 2026.06.09

한여름 콩밭에서 추수까지 — 기계화 콩농사 이야기

지난번 글에서 붉은 콩 씨앗을 심던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그 뒤 이야기다. 그 붉은 콩이 땅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여름 햇살을 받으면서 쑥쑥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콩만 올라오는 게 아니다. 골 사이로 잡초가 같이 올라온다. 콩 농사라는 게 파종은 트랙터와 파종기가 거의 다 해주지만, 그 뒤부터는 사람이 계속 밭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제대로 녀석들이 잘 크고 있는지는 사람이 다니면서 확인해야 하고 밭을 도는데 반나절도 더 걸리는 작업들이다. 잡초와의 싸움이 먼저였다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골 사이 잡초부터 잡아야 한다. 초반에 한 번 잡아주면 그래도 뒤가 한결 수월해진다. 2~3번 정도 콩이 크기전까지 제초작업을 해야 했다. 우리는 콩을 2만 평 가까이 심었으니까,..

벼 추수와 가을걷이 — 콤바인부터 볏짚 곤포까지

한여름을 지나면 벼는 이삭을 패기 시작합니다. 그 푸르던 잎 사이로 고개를 내밀던 이삭이 어느새 묵직해지고, 들판 전체가 황금색으로 물들면서 벼들이 하나둘 머리를 숙이죠. 봄에 모판부터 시작해서 모내기를 하고, 한여름 내내 방제다 비료다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던 그 벼들이 마침내 추수를 맞는 겁니다.저는 강화도에서 영농조합 작업자로 3년을 보냈는데, 그 시절 가장 바빠지던 게 모내기철과 바로 이 추수철였어요. 오늘은 그 추수 이야기를 한번 쭉 풀어볼까 합니다.가을걷이란?가을걷이는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추수(秋收)와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표준국어대사전). 이 글은 그중 벼 가을걷이를, 벼를 베는 일부터 볏짚을 거두는 일까지 제가 강화도 영농조합에서 일하며 본 순서대로 적었습..

귀농 후기 2026.06.05

모내기가 끝나면 진짜 여름이 시작된다 — 뜨거운 벼농사 이야기

모내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이어서 벼농사에 대한 여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모내기가 끝나면 한숨 돌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5월에 심은 모들이 자리를 잡고 6월, 7월, 8월을 지나면서 쑥쑥 크는 동안, 논에는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쌓인다. 농약, 비료, 제초, 병 관리, 새 퇴치까지 물론 밭농사에 비하면 그나마 손이 덜가지만 해야할 일을 거르면 수확에 영향이 가기 때문에 한눈을 팔수 없다.. 한여름 벼농사는 논에서 해야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농약을 사람이 주는 줄만 알았는데 무인보트, 비행기도 있었다. 모내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제초제 살포다. 논에 잡초가 올라오기 전에 미리 눌러줘야 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보통 다른 곳들은 사..

귀농 후기 2026.06.01

붉은 콩 씨앗을 심던 날 — 만평 콩밭 농사 이야기

영농조합에서 두번째 해에는 콩 농사를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콩농사는 그냥 논둑이나 자투리 땅에 씨앗을 뿌리면 되는 줄 알았던 내게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콩 씨앗 포대를 가져와서는 큰 다라에 콩을 넣고 소독약을 부어서 열심히 비볐다. 그러자 콩이 빨갛게 되었다. 그리고 잘 건조시켰다. 빨간콩을 그 때 처음 봤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정말 콩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파종 전에 씨앗을 약제로 코팅하면 발아 초기에 병충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보면 좀 낯선 색이지만, 파종철마다 그 붉은 씨앗을 준비할 때마다 이제 "아, 콩농사 시작이구나" 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그렇게 시작한 콩 농사. 만평이 넘는 면적이었다. 뭐 논농사를 10만평이상 하니 그렇게 크게 ..

한 해 농사가 결정되는 며칠 — 영농조합 모내기의 전 과정

지난번 글에서 모판이 못자리에서 자라 푸른 모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봤어요. 부직포까지 걷고 나면 어린 모가 햇볕을 받으며 한참을 자라는데, 그 모가 10~15cm쯤 되면 드디어 본격 모내기 단계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그 모내기의 전 과정을 풀어보려 해요. 현대화된 영농조합에서는 이걸 어떻게 운영하는지, 그 며칠 동안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요. 트랙터가 도는 논, 옛 쟁기 시대의 끝모내기를 하려면 가장 먼저 논을 갈아야 합니다. 예전엔 소가 쟁기를 끌면서 갈았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옛날 얘기예요. 지금은 트랙터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트랙터가 한 번 들어가서 넓은 논을 쓱쓱 돌면서 써래질을 하고 나면 흙이 다 갈려요. 도시 사람이 처음 보면 그 속도에 놀랍니다. 사람 몇십 명이 며칠 걸려야 했을 일을..

귀농 후기 2026.05.17

발아실에서 못자리까지, 모판 2만 장이 푸른 모로 자라는 과정 — 강화도 영농조합의 봄 (2)

지난 글 "볍씨 신청부터 모판 파종까지"에서 영농조합 봄 작업의 앞단 — 종자 신청과 소독, 파종 라인 이야기를 정리했어요. 이번에는 그 다음 단계입니다. 파종을 마친 모판이 발아실에서 싹을 틔우고 못자리에 깔려 푸른 모로 자라기까지를 사진과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모들이 발아실에서 싹을 틔우고 못자리에 깔려 푸른 모로 자라기까지 실제로 옆에서 작업해보지 않으면 도시 사람들은 알수 없는 부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사실 저도 도시사람이라 이런 건 알지 못했답니다.종자별로 정리된 볍씨 포대들영농조합 창고 한쪽에는 겨울부터 볍씨 포대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종자별로 따로따로 정리된 포대들이 줄지어 놓이는데, 사진에 보이는 건 강화도에서 가장 많이 심는 삼광벼 포대들입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추청도 있고 고시히..

귀농 후기 2026.05.16

시골에는 농사꾼만 사는 게 아니더라, 강화도에서 본 다양한 삶의 모습

비료 살포기 메고 진흙뻘에 빠져서 "내가 뭐 하러 여기 왔지" 하던 그날 이야기로 지난 글을 마무리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다음 날 짐 싸서 다시 서울로 올라갈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서 첫날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발견에 대한 이야기예요.일은 끝이 없었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영농조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직접 경작하는 논과 밭만 챙기는 게 아니었어요. 경작 대행 일도 만만치 않게 많았습니다. 모내기, 볍씨에서 모종 키우기, 논 갈기, 밭 갈기, 비닐 씌우기, 파종, 비료, 농약, 수확, 건조까지. 일 종류를 적어보면 정말 끝이 없더라고요. 저는 그 모든 일이 처음이라 어딜 가도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묻는 신..

귀농 후기 202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