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현실

자동화가 돼도 쉬운 일은 없었다 — 비닐하우스 고추 농사 현실

고고파파 2026. 5. 24. 19:33

맨처음 블로그 글을 썼을때 언급한 2000평 하우스농사를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농사를 접하게 되어서 기대반 두려움반이었다고나 할까. 난  귀농을 하게 된다면 결국 하우스농사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있었고 솔직히 기대가 컸다. 선택한 작물이 고추였기에  하우스에서는  비도 안맞으니 탄저병이 덜 할 것이고, 급수 시스템도 있고, 환기도 된다고 하니까 노지보다 훨씬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고추는 특용작물도 아니고 노지에서도 많이 키우는 작물이라 하우스에서 기르는 것은 크게 다른 점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
그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고 경험이 일천한 내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모종을 하고 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알게 됐다.

자동화가 돼도 쉬운 일은 없었다 — 비닐하우스 고추 농사 현실 1
하우스에 환풍기를 설치준비중이다.

처음엔 노지랑 별다를 게 없겠거니

13개 동을 맡아서 고추를 키웠다. 2000평이 넘었고 노지까지 있어서 생각보다 거대한 면적이었다. 제대로 작물을 확인하면서 돌면 두어 시간도 부족했다. 동마다 돌면서 하우스 상태를 체크하고, 물은 자동으로 나오고, 환기 팬도 돌아가니까 기본적인 건 다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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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하우스 앞 모습. 멀리 3개 동에 급수를 담당하는 물탱크가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예상치 못한 기상 변화가 오면 하우스 안 온도가 급격히 오르내렸고, 병충해는 밀폐된 환경 탓에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속도가 빨랐다. 급수 모터가 고장나는 날은 정말 발을 동동 굴렀다. 여름 한철에 물을 제때 못 주면 고추가 타들어가는데, 수리 업체 연락하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봐도 현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날이 많았다.

2000평이 이렇게 넓은지, 심어보니 알았다.

2000평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얼마안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보통 논이 1000평~2000평 정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밭농사는 논농사와 다른 것을 몰랐던 내가 바보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정말 너무 넓었다. 고추 1주, 1주를 심어보니 얼마나 광활한 면적인지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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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들이 고추 모종을 심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여름을 보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밖이 30도면 안은 40도에 가까워진다. 환기 팬이 돌아가도 달궈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조금만 무리하면 탈진 직전 상태가 된다.
한여름 하우스 내부. 이 안에서 오전부터 작업하면 점심 때쯤 머리가 핑 돈다. 오후에는 너무 더워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는 게 농사다. 잡초는 제때 뽑아야 하고, 줄기가 넘어가지 않게 버팀대도 세워야 하고, 방제 타이밍도 하루 이틀 놓치면 나중에 두 배로 힘들어진다. 자동으로 물이 나오고 바람이 돈다고 해서 할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까 그만큼 더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했다.

자동화가 돼도 쉬운 일은 없었다

겉에서 보면 하우스는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서 편해 보인다. 들어가서 직접 해보면 그 안에는 사람의 관심과 정성이 끊임없이 지속되면서 관리해야 한다는 걸 금방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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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 고추 옆에 고추 하우스가 있다.

 
노지 고추와 하우스 고추의 방제 작업 타이밍을 놓치면 병이 급격이 번지고 나중에 수습이 어려워진다. 노지 고추까지 재배하는 바람에 결국은 하우스 고추만 하면 그래도 좀 줄어들 일도 하나도 줄이지 못한게 일을 더 힘들게 한 원인 중 하나였다.
급수는 자동이어도 방제는 사람이 직접 돌아야 한다. 동력모터에 연결된 호스를 끌고 다니면서 약을 주어야 하는데 하우스안에서 하려면 농약에 중독되지 않도록 마스크를 착용하고 해야해서 쉽지가 않다. 환기는 팬이 돌려도 줄기가 꺾이는 건 하나하나 세심하게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줄기도 묶어주고 버팀대로 다 설치해야 한다. 이건 사람이 해야하는 일이다. 숙련된 사람이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움직이는 게, 자동화 시스템보다 훨씬 결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 관심과 정성이 기본이다. 13개 동을 돌면서 그 말이 맞다는 걸 몸으로 확인했다.
태풍 예보가 뜨는 날 밤엔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비닐하우스가 강풍에 얼마나 버텨주냐가 마음에 걸려서, 중간중간 나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천만다행으로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 긴장감은 한번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도 수확이 주는 보람은 달랐다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고 수확 시기가 오면 기분이 달라졌다. 노지 고추보다 수확량이 많았고, 품질도 노지에 비해서 우수했다. 탈진 직전까지 갔던 여름의 고생이 그나마 보상이 되는 느낌이었다.

잘 자라고 있는 고추 모습

 
그 더위 속에 키워낸 고추. 수확철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를 보면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리고 수확을 여러번 하니 더 좋았다.
하우스 농사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상기후가 심해질수록 노지에서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 늘어날 테고, 그 대안으로 하우스 재배가 커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팜도 있고 일반 하우스도 있지만, 좋은 작물을 키워내는 건 결국 사람의 관심과 현장 경험이다.
13개 동에서 보낸 1년의 경험은 지금도 내가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되고 있다. 모터 고장 앞에서 당황했던 기억도, 태풍 밤에 비상대기하던 긴장감도, 돌이켜보면 다 배움이었다. 하우스 농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현장을 보고 경험자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시길 권한다. 아는 만큼 덜 힘들고, 경험한 만큼 더 잘 버틸 수 있다.